반도체 호황에 우는 소비자

박기석 기자
수정 2026-11-05 01:27
입력 2026-11-04 23:34
AI 산업에 쏠리며 메모리 부족
컴퓨터 가격 1년 만에 26% 상승
노트북 200만원·아이폰 300만원
중견기업에 다니는 현모(47)씨는 최근 중학생 자녀에게 선물할 노트북을 찾다가 최근 급격하게 오른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초에 봐 놨던 100만원대 제품은 200만원대가 돼 있었다. 아이폰을 사 달라고 조르는 둘째 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애플의 첫 폴더블폰(접이식 휴대전화) 아이폰 듀오의 소비자 가격은 329만원, 2년 약정으로 사도 매월 나가는 통신 요금만 20만원에 달했다. 두 딸에게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사 주는 데 한 달 월급을 몽땅 털어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반도체 호황 속 사상 첫 수출액 1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정부와 기업은 샴페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칩플레이션’(반도체+인플레이션)이라는 유탄에 신음하고 있다.
4일 국가데이터처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컴퓨터 가격은 1년 전보다 26.2% 상승했다. 지난 6월 22.2%, 7월 25.1%, 8월 23.7%, 9월 27.4%에 이어 5개월 연속 2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휴대전화기는 지난 7월 2.3% 오르며 평균 물가 상승률 아래에 머무르다가 8월 4.3%, 9월 8.3%에 이어 지난달 10.8%를 기록하며 상승률이 확대됐다.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 가격도 지난 7월부터 4개월 연속 20%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가는 외장 SSD 가격은 최근 40%대 상승률로 가격이 치솟았다.
가격이 급등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있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가 급증하자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 능력을 고부가가치 제품에 우선 배분했다. 그 결과 일반 PC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27.5달러로 지난 9월 26달러에서 5.77%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칩플레이션은 연말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4분기 PC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보다 13~1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구나 스마트 기기는 가격의 하방경직성(내리지 않는 성질)이 큰 공업제품인 까닭에 앞으로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소비자들의 전자기기 구매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 격차에 따른 디지털 격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세종 박기석 기자
2026-11-05 B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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