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뮤지컬 무대에 한국 이야기 더 많아지길”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1-05 01:23
입력 2026-11-04 21:00
美 뮤지컬 연구자 사브란 교수
‘서편제’ 역대 최고 뮤지컬 중 하나노래·연기·춤 갖춘 배우가 경쟁력
영화·신화·민담 등 작품 소재 제안
미국 뮤지컬 연구자 데이비드 사브란(76) 뉴욕시립대 명예석학교수가 가장 많이 언급한 한국 뮤지컬은 세 편이다. 처음 객석에서 본 ‘영웅’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관습을 아주 능숙하게 활용한 작품”이었고, 2017년 관람한 ‘서편제’는 “극장에서 겪은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 지난해 미국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한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을 두고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기술 최전선에 선 한국과 이어지는 힘은 해외에서 아주 강력하다”고 진단했다.
영미 뮤지컬의 문법을 익혀 제 것으로 만든 솜씨, 전통의 소리가 주는 압도적 감동, 국가 이미지를 무대 언어로 바꾼 감각. 세 작품을 향한 그의 평가는 곧 한국 뮤지컬의 현주소다.
사브란 교수는 오는 7일 서울 세텍에서 열리는 ‘2026 글로벌 뮤지컬산업 학술대회’(예술경영지원센터·한국뮤지컬학회 주최) 기조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12년부터 한국 뮤지컬을 연구했고, 2024년 펴낸 ‘텔 잇 투 더 월드’(Tell It to the World)에서 한국과 독일을 브로드웨이 뮤지컬 수용의 두 축으로 분석했다. 그는 책의 핵심 사례로 삼은 ‘서편제’를 “역대 가장 위대한 뮤지컬 가운데 하나”로까지 평가했다.
3일 서울 종로구 포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한국 뮤지컬의 첫 번째 경쟁력을 배우로 꼽았다. “노래·연기·춤을 모두 갖춘 ‘트리플 스레트’의 수준이 인상적”이라면서 가수와 배우, 무용수를 길러 내는 훈련 과정은 “견줄 데가 없다”고 했다. K팝과 한국 영화가 일군 ‘브랜드 코리아’도 해외 성공의 중요한 동력으로 짚었다.
해외 진출이 늘며 불거진 ‘K뮤지컬’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된 ‘어쩌면 해피엔딩’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메이비 해피엔딩’은 같은 극본가와 작곡가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개발 과정이 다르다는 점에서 ‘K뮤지컬’로 묶어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사브란 교수는 국적을 따지기보다 한국인과 한국을 잘 아는 미국인의 공동 작업이었다는 점을 들어 “초국가적 뮤지컬 개발에는 개인적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저서에서 브로드웨이 스타일을 세계 뮤지컬의 ‘공용어’라 불렀던 그는 “지금은 그 표현이 썩 편하지 않다”며 “소규모 작품일수록 각국 전통 음악극의 관습이 더 중요해진다”고 덧붙였다.
한국 뮤지컬이 나아갈 방향으로는 ‘한국 이야기’를 주문했다. 국내 제작사들이 세계 고전을 앞세워 영미권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흐름에 대해 그는 “유럽 고전을 원작으로 한 한국 뮤지컬이 그렇게 많다는 데에 놀랐다”면서 “한국 프로듀서들이 한국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은 미국에서 더 한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영화와 신화, 민담을 뮤지컬 원천으로 삼을 만하다고 부연했다.
학계와 언론의 안목도 높이 샀다. 그는 “독일에서 뮤지컬을 한 번 보고 버리는 오락으로 여기지만 한국에서는 위대한 예술의 한 형식으로 진지하게 다룬다”면서 “산업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데도 학계가 이미 그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게 무척 고무적”이라고 반겼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11-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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