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악화 주범 ‘타우 단백질’ 퍼뜨리는 연결고리 ‘FAM84B’ 세계 첫 규명

이병문 기자
수정 2026-11-04 10:54
입력 2026-11-04 10:54

국립보건연구원, 신경염증과 타우 확산 잇는 핵심 조절인자 ‘FAM84B’ 역할 밝혀
환자 사후 뇌조직·줄기세포 기반 신경세포 분석, 기전 입증…치료제 개발 새 지평



국내 연구진이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 진행을 가속하는 핵심 요인인 ‘타우(Tau) 단백질’이 주변 뇌세포로 퍼져나가는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치매 발병 기전의 미스터리를 풀고, 향후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과학적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질병관리청(청장 임승관) 국립보건연구원(원장 남재환)은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 환자의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변형된 타우 단백질이 주변 건강한 뇌세포로 이동하는 것을 촉진하는 단백질 FAM84B의 역할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신경염증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Neuroinflammation’에 10월 2일 온라인 공개됐다.


뇌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미세소관 결합 단백질인 타우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신경세포의 뼈대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화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타우 단백질에 비정상적인 변형(인산화 등)이 일어나면 서로 엉겨 붙어 응집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 타우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 진행성 핵상마비(PSP), 일차성 연령관련 타우병증(PART)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신경세포 손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특히 병리적 타우가 한 세포에 머물지 않고 주변의 건강한 뇌세포로 차례차례 퍼져나가며 뇌 전체로 병변이 확산되는 과정은 치매가 악화되는 핵심 기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어떤 생물학적 요인과 신호 전달 체계가 이 위험한 이동을 촉진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진(연구책임자 조철만 연구관, 공동 제1저자 윤광호·박혜연,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 김원호 부장)은 환자의 사후 뇌조직과 환자 유래 줄기세포로 만든 신경세포를 정밀 분석하는 방식으로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타우 관련 질환 환자의 뇌조직과 알츠하이머병 환자 유래 신경세포에서 FAM84B 단백질의 양이 치매가 없는 일반 대조군의 뇌조직·신경세포보다 눈에 띄게 증가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진행된 세포 실험에서는 FAM84B 발현량이 타우의 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진이 신경세포 내 FAM84B의 양을 인위적으로 늘리자, 세포 밖으로 방출되는 타우 단백질의 양이 급증했고, 이를 전달받는 주변 세포의 수도 함께 증가했다. 즉, FAM84B가 타우의 세포 간 이동을 가속하는 촉진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실증된 것이다.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FAM84B가 어떠한 기전으로 타우 이동을 유발하는지 추적했다.

대표적인 염증 자극인자인 IL-6(인터루킨-6)로 신경세포를 자극하자 FAM84B의 발현이 크게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세포 간 타우 단백질의 이동 역시 활발해졌다. 이 과정에서 리아노딘 수용체(RYR3)와 연계된 세포 내 칼슘 신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클라트린(clathrin) 관련 세포 내 유입 과정도 일부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진이 리아노딘 수용체 억제제인 약물 ‘단트롤렌(dantrolene)’을 처리해 칼슘 신호를 억제하자, 염증 자극 환경에서도 FAM84B와 연계된 신호가 차단되며 타우 단백질을 전달받는 주변 세포의 수가 유의하게 감소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신경염증 반응과 병리적 타우 확산 현상이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FAM84B가 신경염증 자극과 타우 전이를 연결하는 결정적인 조절인자로 기능함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염증 반응이 타우 전이에 미치는 경로 속에서 FAM84B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치매 진행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새로운 분자적 치료 표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보건당국은 이번 성과가 세포 수준의 기초연구 단계임을 강조했다. FAM84B가 실제 생체 내 질병 진행 과정에 미치는 영향과 향후 치료제 개발에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 등 다각도의 후속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조철만 연구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신경염증이 타우 전이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FAM84B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성과”라며, “앞으로의 후속 연구를 통해 이 경로가 실제 치매 질환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서의 가능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원호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장 역시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질환의 발생과 진행을 관장하는 정교한 생물학적 기전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인체 유래 자원과 줄기세포 기반 연구를 긴밀히 연계해 신경퇴행성 질환의 숨은 기전을 밝혀내고, 실효성 있는 치료법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적 근거들을 단단하게 쌓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의 이번 연구는 고령화 사회의 최대 보건 현안인 치매의 진행 원리를 한 단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으며, 향후 난치성 신경퇴행성 질환 정복을 위한 혁신적 신약 개발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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