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물가 대책과 ‘김장포기族’

홍희경 기자
수정 2026-11-04 00:58
입력 2026-11-04 00:09
올해 배추 농사가 잘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가을배추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8.5% 늘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도 화끈하게 밀어준다. 배추·무·젓갈 등 김장 재료 할인 예산을 지난해보다 28% 더 지원하기로 했다. 역대 최대인 640억원. ‘한 포기 더’ 담그자는 캠페인도 벌인다. 김장 담그기 딱 좋은 해다.
정작 바빠져야 할 손들이 부엌 문턱에서 멈칫한다.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가구는 올해 58.6%. 지난해 64.2%보다 줄었다. 김장포기족이 또 늘어난 것이다. 찬바람 불면 김치부터 담가 아들딸 집에 전해주던 세대가 점점 줄어든다. 손맛의 대물림이 멈추는 일이 어느 집에나 익숙해지고 있다. 시댁과 친정에서 받아오던 김치가 끊기자 담그는 법을 배우는 대신 시판 김치로 갈아타는 가구가 늘었다.
그래도 김장 문화는 남아서 평소엔 김치를 필요한 만큼 사 먹고, 김장철이 되면 찌개용·부침개용 김치를 대량 주문해 김치냉장고를 채운다. 해외 수출까지 하는 대기업 김치는 물론이고 지역 특색을 살린 특산물 김치, 호텔이나 이름난 식당이 브랜드를 걸고 판매하는 김치까지 골라 먹게 됐다. 김치산업 실태조사에서 판매용 상품김치가 국산 김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7.6%에서 2024년 32.4%로 커졌다.
전용 김치통에 쌓아 뒀다 한 포기씩 꺼내 잘라 먹든, 봉지를 뜯어 접시에 가지런히 놓든 식탁 위에선 똑같은 김치. 그런데 물가 당국은 다르게 대접한다. 어제 발표된 소비자물가 통계에서 배추는 농축수산물, 김치는 가공식품으로 분류됐다. 지난달 배추값은 1년 전보다 11.8% 내렸지만 김치는 1.0% 내리는 데 그쳤다. 완제품 값에는 재료 원가 말고도 인건비와 운송비 등이 얹힌다. 정부의 할인 지원은 소비자가 식재료를 살 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시판 김치를 먹는 집은 정부 혜택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셈이다. 사 먹는 김치가 익숙해진 시대. 물가 대책도 낡은 틀을 깨고 부엌 밖으로 나올 때가 됐다.
홍희경 논설위원
2026-11-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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