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칼럼] 李 대통령, 외롭거나 너무 두렵거나

황수정 기자
수정 2026-11-04 00:57
입력 2026-11-04 00:12

지지율 추락에 사면초가
믿을 건 자신뿐 ‘SNS 독단 정치’
설익은 정책 더는 나오지 않게
장관, 참모들 역량부터 빌려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침없는 말투로 내내 논란이었다. 솔직한 화법은 따뜻했지만 감정이 실린 말을 그대로 쏟아냈다. 국정연설 도중에 원고에 없던 말을 불쑥 꺼내 소동을 빚기도 했다.

대통령의 ‘애드리브’에 청와대는 바람 잘 날 없었다. 수습하는 참모들이 식은땀을 흘렸을 수밖에. 최근 만난 핵심 참모는 설화에 휘말릴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이 곤혹스러워했다고 기억했다. 어느 날은 “내가 대통령 어법을 공부하지 못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의 엑스(X) 글이 논란이다. “SNS는 숨구멍”이라 선언하고 빈도와 강도를 높인다. 야당이 잦은 해외 순방을 꼬집자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 링거 맞으며 코피가 터진다”고 맞섰다.


야당의 기계적 공세에 대통령이 시시콜콜 반응하는 것은 남는 장사일까. 본전을 찾기 힘든데, 이 대통령의 셈법은 다른 모양이다.

센 척하지만 대통령은 절박한 것이다. 대통령이 폐지를 제안해 논란이 뜨거운 다문화가정 우대제도를 보자. 이 대통령이 X에 공유한 글의 출처는 에펨코리아(펨코). 보수 성향 2030 남성들이 주로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나는 대통령이 펨코 게시물을 우연히 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30 청년들의 지지가 누구보다 절실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다. 추락하는 지지율이 답답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직접 여론 소통을 하겠다는 상황. 정책의 불합리를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빌려 지적한다면 일석이조가 된다. 실제로 펨코에는 “대통령에게 호감이 생겼다”는 댓글들이 달린다.



국정 혼란의 원인은 분명해진다. 툭 던지고 반발하면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농지 전수조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 부동산 세제 등 줄줄이다. 참모와 장관들이 대통령의 손가락 끝만 쳐다본다. 이 대통령이 X에 덜컥 정책을 꺼내면 담당 부처가 묻지마 속도전에 들어간다.

정책 번복 사고들이 줄줄이 터져도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 많은 현안들을 제치고 뜬금없이 꺼낸 것이 이주민 혜택 문제다.

누구나 성공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 학습했던 성공 방식을 향수하고 있다. “성남시장 때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대권에 도전할 때부터 호사가들이 걱정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성남시장일 때는 ‘싸움닭 전략’이 통했다. 편을 나누고 논쟁을 붙여 특정 사안을 공론화한 뒤 시민들의 관심을 사면 뜻이 관철됐다.

대통령이 국민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라면 위험하다. 무슨 명분이었든 국가 구성원을 갈라쳐 반감을 일깨우는 방식이라면 패착일 수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가 “공동의 증오심은 원수들끼리도 동질감으로 묶어 사회적 저항을 무력화시킨다”고 갈파한 대로다. 이주민 지원 탓에 내 밥그릇이 작아졌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사회 갈등의 불쏘시개를 던진 셈이다.

잠시 전지적 이재명 시점. 대통령은 지금 외롭고 다급하고 두렵다. 정성호(전 법무장관)도 가고, 강훈식(전 비서실장)도 가고. 소울메이트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이제 없다.

떨어지는 지지율에 공소취소는 언감생심. 외곽 엄호를 책임지라고 온갖 뒷바라지로 당대표에 앉혔더니 김민석은 맥을 못 춘다. 그러자 “어떤 깃발을 들지 생각 중”이라며 정청래가 기지개를 켠다. 계파 갈등에 코가 석 자나 빠진 더불어민주당이 민심을 거스르는 무리수를 두기는 갈수록 난망하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민주당은 다음 총선,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퇴임하자마자 재판을 받게 될 처지다. 믿을 건 자신뿐.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SNS 전사가 될 것이다.

임기가 3년 7개월이나 남은 대통령이 혼돈을 헤맨다면 국민 불행이다. 이 대통령은 책에 “나는 겁이 없다”고 썼다.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결기가 지금 필요하다.

공소취소에 매달리지 않으면 국정의 많은 부분이 반듯해진다. 국정 성과가 급해서 휴대전화부터 쥐지 않아도 된다. 참모와 장관들한테 세상 돌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먼저 듣기 바란다.

황수정 논설실장

황수정 논설실장
2026-11-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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