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수 “이 작품만큼은 서울에서”…캐시 시선으로 다시 본 ‘폭풍의 언덕’ 세계 초연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1-03 18:28
입력 2026-11-03 14:03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3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 컨벤션에서 열린 ‘워더링 하이츠’ 제작발표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밤 새워 읽은 소설…시대 넘는 가치
롤러코스터처럼 뮤지컬화 요소 갖춰”
“지금까지 월드 프리미어는 대부분 미국 뉴욕 등 해외에서 했습니다. 이 작품만큼은 서울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관객들은 작품에 파고들고 몰입해서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브로드웨이에 안착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차기작의 첫 무대로 서울을 골랐다. 에밀리 브론테(1818~1848)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워더링 하이츠’다. 신 대표는 3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 컨벤션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만큼 자신 있게, 섬세하게 준비했다”면서 “작품을 깊이 파고들며 몰입하는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고 전 세계로 나갔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작품의 힘은 원작이 품은 감정의 온도다. 신 대표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과 집착, 용서받지 못할 복수에는 인간의 가장 격렬하고 파괴적인 본능이 원초적인 형태로 담겨 있다”면서 “출간 당시 숱한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 과격한 서사 이면에서 시대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사랑의 가치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든다”며 “뮤지컬로 만들기에 이만한 요소를 갖춘 작품은 없다”고 강조했다.

‘워더링 하이츠’는 ‘일 테노레’, ‘위대한 개츠비’에 이은 오디컴퍼니의 세 번째 오리지널 IP(지식재산)로, 내년 1월 26일부터 2월 28일까지 5주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오디컴퍼니가 내년에 내놓는 창작 뮤지컬 세 편 가운데 첫 작품이기도 하다. ‘위대한 개츠비’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서울 공연, 북미 투어를 합쳐 누적 관객 140만명, 누적 매출 1900억원을 기록 중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이 소설을 붙들고 밤을 꼬박 새웠다는 신 대표는 2020년 기획에 착수해 ‘위대한 개츠비’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다.



작품은 원작의 시선을 새로 짰다. 비극의 주인공인 캐서린의 딸 캐시가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뒤쫓으며 관객과 함께 풀어 가는 구조다. 오해로 히스클리프와 헤어진 캐시가 힌들리와 결혼해 낳은 아들 헤어턴에게까지 복수가 대물림되고 파괴적인 사랑이 이어지다가 캐시와 헤어턴이 끝내 화해하게 되는 여정이 극의 축이다. 1세대와 2세대의 연결을 보여주기 위해 한 배우가 캐서린과 캐시를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신 대표는 “연출가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독창적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국내에서 익숙한 ‘폭풍의 언덕’ 대신 거센 바람과 저택을 뜻하는 원제를 택한 것도 작품의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3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스카이31 컨벤션에서 열린 ‘워더링 하이츠’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기획부터 4회 워크숍까지 6년 공들여
한국과 영국 출신 조화한 창작진 눈길
창작진 구성은 그간의 행보와 결이 다르다. 해외 창작진과 미국에서 작품을 만들어 온 그는 이번엔 한국 창작진을 중심에 세웠다. 극작·작사는 ‘팬레터’, ‘개와 고양이의 시간’에 참여한 한재은이, 작곡은 클래식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공부한 조우인이 맡아 2020년부터 대본과 음악을 함께 다듬었다.

신 대표는 “‘위대한 개츠비’ 때는 번역 대본을 붙들고 한 줄 한 줄 씨름했는데, 한국 작가와 작업하니 서사의 밀도와 감정선의 디테일이 켜켜이 쌓였다”고 돌아봤다. 무대의상은 독일에서 활동해 온 김환 디자이너가 맡는다. 신 대표는 “연극 ‘타인의 삶’을 보다가 무대와 의상이 너무 궁금해 직접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니 정말 창의적인 디자이너였다”고 전했다.

해외 창작진도 탄탄하다. 연출은 웨스트엔드 뮤지컬 ‘아멜리에’를 연출한 영국의 마이클 펜티먼이다. 여러 연출가와 작품 해석을 맞춰 본 끝에 고전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역량을 높이 사 낙점했다. 음악 슈퍼바이저로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가 힘을 보탠다. 음악은 20인조 이상 오케스트라에 실려 요크셔 황야를 휘감는 바람과 인물들을 삼키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묵직한 선율로 그려 낼 예정이다.

무대는 신 대표가 “재미있는 친구”라고 소개한 영국 디자이너 맥스 존스가 맡았다. 디자인은 이미 완성됐지만, 신 대표는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현대 오페라처럼 간결하고 이미지가 앞서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작품 초반에 핵심이 되는 유령 장면에 홀로그램을 쓰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감성에 맞지 않아 접었다고 했다.

토월극장 깊이 활용해 원근감 높여
“극장에서 요크셔 한복판 느끼도록”
토월극장의 깊이도 무기다.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무대로 끌어들일지도 저울질하고 있다. 그는 “토월극장에서는 머릿속으로 그린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서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요크셔 황야 한복판에 서 있다고 느끼게 하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토월에서 선보인 무대는 다른 극장에서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제작 과정에도 공을 들였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네 차례 워크숍을 열어 대본과 음악을 다졌다. 공연을 앞두고는 3개월간 극장을 빌려 2개월간 리허설과 비공개 프리뷰를 거친 뒤 5주간 공연하는 ‘정통 트라이아웃’ 방식을 택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앞뒤 일정을 비우고 이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그는 “공연이 끝났을 때 작품이 주인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 대표는 “사실 결과가 무섭다”면서도 “층층이 과정을 밟아 왔다는 자신감은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연극이나 영화로도 크게 흥행한 사례가 없는 원작이지만 뮤지컬로는 ‘위대한 개츠비’보다 더 큰 성과를 내고 싶다”며 “서울 관객과 호흡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린 뒤 웨스트엔드를 거쳐 전 세계 프로덕션으로 넓혀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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