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팬덤 정치의 숨겨진 상처들

이건 기자
수정 2026-11-01 22:34
입력 2026-11-01 22:34

과거엔 갈등하더라도 결국 타협
지금은 무작정 서로 적대시
통합 대신 상처 주는 팬덤 정치
혐오가 혐오를 낳는 정치 반복

A씨는 1990년대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보통의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 참여의 열정을 다시 느꼈다. 뒤이은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고, 그다음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를 위해 같은 일을 했다. 그러면서 ‘친문 수박’을 척결하는 ‘개딸 정치’ 쪽으로 돌아섰는데, ‘숨은 악’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믿었던 때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정치에서 멀어져 ‘조용한 정치 기피자’가 되었다.

2000년대 대학을 다닌 B씨는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을 계기로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만난 사람들과 더없이 소중한 인연을 가진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면서 즐거웠고, 서로의 가족과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2017년 대선 때도 좋았다. 지지하는 후보는 달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B씨는 시민운동을 넘어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꿔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추천해 지역의 당직을 맡게 됐다. 하지만 B씨는 2022년 대선을 전후해 고통스러운 여러 일을 겪은 뒤 당직을 그만두었고, ‘정치에 실망한 회의주의자’로 남았다.

C씨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다. 그 뒤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정치학을 가르치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은퇴한 정치학자인 그는 지금 “정치가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화가 나 있다. A씨처럼 C씨도 정치 관련 정보로부터 자신을 차단한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 이야기조차 싫은 A씨와는 달리, C씨는 적극적으로 ‘정치 혐오’를 표현한다. B씨는 정치에 실망해 당직을 그만두고 “정치로부터 물러나 정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려고 고민” 중인데, 그와는 달리 C씨는 정치에 대한 확고한 자기 이해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정치 일반이 아니라 지금의 정치, 즉 “혐오로 작동하는 팬덤 정치를 혐오”한다.


기존의 정치학에서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는 태도나 성향을 가리켜 ‘정치 무관심’(political apathy)으로 정의해 왔다. 나의 삶에 정치가 별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을 뜻하는데, 핵심은 ‘무덤덤함’이나 ‘초연함’이다.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일로 여길 뿐, 정치에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것과 같은 적극성은 없다. 앞서 본 A씨나, B씨, C씨는 다르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의 열정을 가졌던 이들이다. 지금도 초연하거나 무덤덤하지 못할뿐더러, 실망하고 회피하고 혐오하는 분명한 감정이 세 사람을 특징짓는다.

A씨는 정치인의 팬덤 지지자로 4년을 열심히 활동하는 동안, 마음이 늘 불편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잘 지냈던 사람들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은 것 때문에 괴로웠다. 같은 당 안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를 두고 격렬하게 다퉜던 일이 고스란히 내면의 고통으로 남았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일이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그는 인간관계를 망치고 나서야 결국 정치를 버렸다.

당직을 맡으면서 B씨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갈등을 해결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정치의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이른바 ‘팬덤 정치’였다. 그들은 사회를 통합하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찍어내는 ‘권력 정치’를 했다. 누가 이겨야 하는지에 모든 열정을 바쳤고, 그 때문에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몹시 공격적이었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그간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팬덤 정치에 쉽게 빠졌고 주저 없이 공격하고 상처를 주었다.



C씨는 과거 ‘3김 정치’를 경험한 세대다. 적어도 그때는 정치가 지금처럼 ‘불모의 흥분상태’가 아니었다. 싸우고 갈등하더라도 결국 대화와 타협으로 성과를 내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살아 있었다. 그러다 무작정 서로를 적대하는 ‘정치 아닌 정치의 시대’가 왔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상처가 고통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불일치와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공존하고 협동하기 위해 불러들인 정치가 오히려 분열과 적대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C씨를 우울하게 한다. 누가 정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박상훈 정치학자·태재대학원 특임교수

박상훈 정치학자·태재대학원 특임교수
2026-11-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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