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인 듯 삶인 듯… 흔들리는 몸짓이 던진 질문들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1-01 19:49
입력 2026-11-01 19:49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3편
국립무용단이 차세대 안무가를 발굴하는 ‘2026 안무가 프로젝트’를 6~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최호종·정보경·이재화 등을 길러낸 무대로, 올해는 이이슬(36)·송윤주(31)·선승훈(30)의 신작 세 편을 엮었다. 청년교육단원들이 무대에 오르고, 안무가들은 멘토와 함께 작품을 다듬었다.국립극장 제공
드라마 ‘정년이’ 총안무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이이슬의 ‘죽일 수도 없고’는 “온전히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나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얇고 긴 대나무를 목에 건 무용수들이 바닥을 천천히 쓸거나 대나무를 어깨에 얹은 채 움직인다. 대나무를 높이 치켜들고 상체를 뒤로 젖히는 등 기본기 없이는 버티기 힘든 자세가 거듭되며 무용수들이 감당할 무게를 그린다.
키를 훌쩍 넘길 만큼 키운 장구채와 물동이 등을 활용한 데에 이이슬은 “무용을 배울 때 장구채는 장단을 치는 도구이자 시선을 이끄는 지휘봉이었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데도 쓰였다”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리듬과 방향, 고통과 통제의 감정을 품은 오브제”라고 설명했다. 사운드 아티스트 임용주의 음악에서는 국악의 힘과 전자음의 잡음이 맞부딪친다.
국립극장 제공
지난해 국립무용단 ‘미인’ 조안무를 맡았던 송윤주는 ‘백야’를 선보인다. 웅크린 무용수 너머로 웃음소리가 아득히 번진다. 조명이 비추는 곳마다 무용수들은 넘어지고 뒹굴고, 제 목을 조르고, 허공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무대가 환해진 뒤에도 몸들은 멈추지 않는다. 한밤에도 어두워지지 않는 백야처럼 쉬지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작품에서 밝음은 쉬지 못하는 상태, 어둠은 불안을 감추고 안식을 주는 시간으로 익숙한 명암의 인식을 뒤집는다. 송윤주는 “모두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작품”이라며 “관객이 뻔하지 않은 경험 속에서 위로를 느꼈으면 한다”고 소개했다. 처음으로 전통 소재를 덜어냈다는 그는 “한국적이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 추는 전통춤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국립극장 제공
마지막 ‘카운트(COUNT)’는 2024년 입단한 단원 선승훈의 작품이다. 쓰러진 선수에게 다시 일어설 시간을 세는 복싱의 카운트를 모티브로 삼았다. 맞붙은 두 무용수는 맹수의 싸움처럼 팽팽하고, 한국춤 특유의 팔과 어깨 놀림이 복싱 스텝과 맞물려 에너지를 뿜는다.
선승훈은 “무용수가 겪는 육체적 피로와 공연 전 스트레스가 시합을 앞둔 선수의 긴장감과 닮았다고 느꼈다”고 작품의 출발점을 전했다. 그는 “스포츠 동작을 무용으로 소화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계속 찾고 있다”면서 “여성 무용수들이 에너지를 어디까지 뿜어낼 수 있을지, 몰입과 긴장 사이를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세 작품은 모두 ‘흔들림’을 품고 있다. 이이슬은 ‘흔들리는 중심’, 송윤주는 ‘흔들리고 부유하는 몸짓’, 선승훈은 ‘예기치 않은 흔들림과 회복’을 말한다. 의도한 공통분모는 아니다. “몸의 힘을 덜어내고 흔드는 법부터 익힌”(송윤주) 한국춤의 시작이자 “곡선적이고, 숨을 막았다 푸는 호흡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이이슬) 움직임이다.
선승훈에게 무용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르”다. “무의식 속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송윤주), “나는 과연 무엇을 누르면서 살아가고 있나를 떠올리면서”(이이슬) 보는 게 이번 ‘안무가 프로젝트’의 관전 포인트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11-02 18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