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용기를 내… 다시 사랑해도 괜찮아”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0-30 01:58
입력 2026-10-30 00:02
사랑을 읽는 타로카드
문혜정 지음/ 창비/ 252쪽/ 1만 7000원
17장의 카드로 읽는 삶의 고민들고통 끝에 기다리는 새로운 시작
창비 제공
13년 연애의 끝을 세련은 파산에 빗댄다. 사랑을 담보 삼아 서로를 조금씩 할퀴는 사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감정도 파산한 연인에게는 기한이 지난 약속어음”(9쪽)으로 전락한다. 남의 고민을 타로카드로 수습해 주던 세련이 자신이 쥔 부도어음을 마주하고 회생을 시도하는 이야기가 전작 ‘타로카드 읽는 카페’였다면, ‘사랑을 읽는 타로카드’는 파산 이후를 살아내는 그의 한 해를 좇는다.
열일곱 살에 딸을 낳은 엄마, 아버지가 제각각인 세 동생, 옛 연인 윤주를 등진 세련은 동네 카페 구석에서 타로를 봐주며 웹툰 스토리를 쓴다. 새 삶의 첫 겨울, 웹툰을 그리는 연하의 진주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스스럼없는 애정 앞에서 자꾸 몸을 사린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어두운 틈”(10쪽)에 발이 묶인 탓이다.
그사이 카페 사장은 폐업을 선언하고, 윤주는 약혼녀와 함께 청첩장을 내민다. 이번에도 세련은 달아날까.
장마다 꺼내 드는 타로카드는 이 소설의 이정표다. 속박의 ‘악마’에서 활기찬 ‘태양’을 지나 완성의 ‘세계’에 이르는 17장의 카드는 세련이 건너는 계절의 지도이자 카페를 찾는 이들의 고민이다. 무대를 단념하지 못하는 무당, 가정 있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바람난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길 원하는 딸. 그들의 카드를 읽어 주던 세련은 어느새 제 마음을 읽고 “상처는 두려워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164쪽) 스스로를 달랜다. 손님들이 카드에 묻는 질문은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오래 마케터로 일하다 플로리스트가 된 문혜정 작가는 우연히 배운 타로로 지인들의 고민을 들어준 경험을 소설로 옮겼고, 그 데뷔작은 11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작가의 이력은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세련에게 부모는 비바람에 버티게도, 이유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게도 하는 “땅속 깊이 박힌 뿌리”(205쪽)다. 썩은 뿌리는 드러내도, 도려내도 아프다는 고백은 흙을 만져온 손과 마음을 들여다봐 온 눈이 함께 빚은 문장이다.
작가의 말대로 이번의 세련은 “더 용기를 내어 변화하고자” 한다. 누군가와 영영 이별하고 다시 무너지면서도, 놓아줄 사람은 놓아주고 흘려보낼 기억은 서서히 흘려보낸다. “고통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상징”인 ‘죽음’ 카드에 이어 마지막으로 내민 ‘세계’ 카드는 새 길을 나서라는 예언이 아니라 다시 사랑해도 괜찮다는 허락으로 읽힌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10-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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