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노예무역 배상

서동철 기자
수정 2026-10-29 00:50
입력 2026-10-29 00:11
윌리엄 영국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의 카리브해 방문을 앞둔 2022년 3월 22일. 자메이카 킹스턴의 영국 고등판무관 사무소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손에는 영국 정부가 아프리카인의 대서양 노예무역과 원주민 착취, 식민지배에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다.
이번 주에는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의 카리브해 국가 순방에 맞춰 더욱 조직화된 노예무역 배상 시위가 준비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영연방 정상회의가 열리는 앤티가바부다의 세인트존스에서 사과와 배상을 회의 의제로 삼도록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노예무역 배상 운동은 카리브해와 아프리카 시민단체가 의기투합하면서 힘을 얻고 있다. 유엔 총회가 지난 3월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찬성 123개국에 반대 3개국, 기권이 52개국이었다. 미국·이스라엘·아르헨티나는 반대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27개국은 기권했다. 한국은 찬성했다.
일본이 기권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일본은 ‘노예제와 노예무역이 중대하게 정의롭지 못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는 했다. 하지만 결의안의 일부 표현이 ‘인도에 반한 죄’의 개념을 넘어설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의안에 담긴 ‘약탈되거나 불법 반출된 문화유산의 반환·환수’도 국제조약과 자국 법령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계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납치된 조선인을 10만명 안팎으로 추정한다. 많게는 4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 노예가 다시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려갔다는 기록도 있다. 왜승 경념(慶念)은 ‘일본의 인간상인이 싸움터 바로 뒤를 넘나들며 남녀 노약자를 사들이고 새끼로 목을 묶은 다음 줄줄이 옭아매 배에 태웠다’고 일기에 적었다. 유엔 결의문이 아프리카 노예와 대서양 노예무역에 초점을 맞췄음에도 일본은 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10-2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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