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도 돌아가는 ‘경제 컨트롤타워’… 성장의 그늘 해법 찾는다 [정공법]

조중헌 기자
수정 2026-10-29 08:47
입력 2026-10-28 19:30
정공법은 정부의 ‘정책’,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 정책과 제도를 구현하는 ‘법’을 뜻합니다. 어렵지만 놓쳐선 안 될 쏠쏠한 정책 뉴스, 멀어 보이지만 내 곁에 있는 관가의 뒷이야기,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해 줄 법과 제도를 최대한 쉽게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경제정책 무게중심 청와대 → 부총리 이동
靑경제참모 포함 협의체 사실상 매주 가동
형식적 회의 대신 “사전 조율 필요” 지론
‘설익은 정책·부처간 힘겨루기’ 비판 차단
경제부처 장관들이 매주 일요일 휴일을 반납하고 있습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약속했던 ‘경제현안간담회’를 신설해 장관들을 소집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총리가 부처 간 정책 이견을 조율하던 ‘녹실회의’가 부활했다는 평가와 함께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청와대에서 부총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이 부총리는 취임 이후 지난달 27일 첫 경제현안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이어 지난 5일과 11일, 25일까지 한 달 동안 총 네 차례 회의를 열었습니다. 주요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포함한 참모진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사실상 매주 가동한 셈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28일 “실무자 선에서 미리 협의한 결론을 형식적으로 다루는 자리가 아니라, 부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각 부처의 생각을 좁혀나가는 데 실질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두고 과거 관계부처 장관들의 비공식 정책 조율 창구였던 ‘녹실회의’가 연상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녹실회의는 1960년대 장기영 전 부총리 재직 시절 시작됐습니다. 당시 서울 세종로 경제기획원 3층 부총리 집무실 옆 접견실에서 열렸는데, 의자와 양탄자가 녹색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녹실회의는 1990년대 중·후반 ‘청와대 서별관 회의’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이 부총리는 평상시 실무진이 이미 결론을 내린 안건을 장관들이 형식적으로 논의하는 기존 회의 방식에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제정책국장 시절부터 “정책이 상당 부분 진행된 다음에 부처끼리 만나면 조정이 더 힘들기 때문에 사전 협의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는 겁니다. 큰 정책을 발표하기 전 조율 과정을 미리 거쳐야 ‘설익은 정책’이라는 비판과 ‘부처 간 힘겨루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간담회 사전 조율 후 경장회의 안건으로
퇴직급여 사외적립·국고채 발행 조절 성과
中 전기차 공세 막을 지원책 두고 논의도
실제로 간담회에서 논의한 정책이 공식 경제관계장관회의 안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첫 간담회에서는 퇴직연금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2028년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첫 간담회에서는 또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시장 공세에 대한 대응 방안도 다뤘습니다.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잠식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방안을 검토한 겁니다. 전기차 보조금과 산업 지원, 세제 혜택 등이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만큼 관계부처 간 조율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진행 중인데요, 이 부총리가 국정감사에서 “전기차(완성차)에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적용할지를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11월 초부터 진행될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관의 조세소위원회 전후로 정부 입장이 공식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간담회에서는 주거·일자리·서민금융 등 3대 핵심 사회정책과 민생물가 관리, 국내생산세액공제 보완 방안 등도 논의됐습니다. 3대 핵심 사회정책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도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습니다. 재경부가 이달 국고채 발행물량을 당초 계획 대비 5조원 줄인 것도 정책 조율의 성과로 거론됩니다.
‘왕실장’ 김용범 1기 경제팀과 대비
“내각에 더 힘 실어주는 게 사실”
회의 소집권 지렛대로 정책 조율 이끌어
“부처 내 회의적 시각 바뀌어” 반응도
이런 모습은 관료 출신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던 1기 경제팀과는 대비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당시에는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부총리보다 정책실장에게 쏠려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왕실장’으로 통하던 김용범 전 정책실장은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1차관 출신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강하게 그립을 쥐고 경제·산업·재정 분야의 주요 제도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다만 레버리지 ETF 도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부처 간 협의가 이뤄졌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고, 페이스북을 통한 잇단 정책 관련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윤철 전 부총리의 경제팀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기 경제팀 당시보다는 내각에 힘을 더 실어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김 실장의 후임인 하준경 청와대 정책실장은 회의에서 제기된 각 부처의 의견을 먼저 듣고 정리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와대가 정책 조정을 직접 주도하기보다는 부총리에게 논의의 주도권을 준 겁니다.
재경부가 기획예산처와 분리되면서 예산 편성권이라는 ‘툴’(도구)은 잃었지만, 회의 소집권을 지렛대 삼아 정책 조율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부총리가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마련해 대통령의 판단을 이끌어낸다면 예산권 없이도 경제정책 총괄 부처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재경부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도 누그러지고 있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재경부 관계자는 “부처 분리 이후 ‘예산이라는 도구도 없는데 무슨 정책 조정이냐, 세제 개편 같은 고유 업무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내부망에 종종 올라왔지만 지금은 확연히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부총리 측은 회의 장면 사진을 공개해 부총리의 존재감을 홍보하기보다는 정책 성과로 조정력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경제현안간담회가 실제 부처 간 이견을 얼마나 좁히고 정책 성과를 만들어내느냐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세종 조중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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