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구조 도왔던 아들… 4년간 트라우마 겪다 세상 등져”

정회하 기자
수정 2026-10-28 00:40
입력 2026-10-28 00:40

29일 참사 4주기… 160번째 희생자 백형준씨 부친 인터뷰

현장 인근 자영업… 부상자 등 옮겨
“아들 무사하다며 안도했는데” 한탄

10·29 참사특조위 중간보고회 개최
12월 ‘尹·이상민 방문 조사’ 등 계획
질의응답 없이 떠나자 유족 항의도
고 백형준씨의 아버지인 백가인씨가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벽에 붙은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저도 처음에는 ‘내 아들은 무사하다’며 안도했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들이 뒤늦게 참사 희생자가 될지요.”

10·29 이태원 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만난 백가인(68)씨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아들은 올해 6월 국가가 참사 160번째 희생자로 인정한 고 백형준씨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했던 형준씨는 사고가 발생하자 현장에서 부상자들과 시신을 옮기는 등 구조에 참여했지만, 이후 3년 반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올해 4월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2020년 가게를 연 형준씨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가 2022년 무렵부터 어렵사리 회복해 2호점까지 냈다. 그러나 2호점 개점 이틀을 앞둔 시점에 참사가 발생했다.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던 상황에서도 형준씨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뛰어나가 구조에 나섰다. 체격이 큰 형준씨는 주로 덩치가 큰 사람들을 옮기는 데 힘썼다고 한다.

백씨는 그날 이후 아들이 서서히 말라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아들은 “뉴스 다 보셨잖아요”라며 말문을 닫았다. 형준씨는 2024년 4월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형준씨가 참사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가족이 참사 현장 폐쇄회로(CC)TV 화면 등 증빙 자료를 직접 찾아내 제출하는 고통도 컸다. 백씨는 “당국이 구조 활동을 했던 이들을 제대로 조사하고 상담했다면 아들의 심각함을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참사 당시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상인과 행인, 소방관들의 심리적 상흔은 심각한 수준이다. 형준씨에 이어 161·162번째 희생자가 된 소방관 남모씨와 박모씨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졌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김종수(53) 당시 강남소방서 구조대장은 “이튿날 새벽 동료들과 눈물 흘린 기억이 또렷하다”며 “아직도 이태원을 지나가면 헛구역질이 나고 괴롭다”고 털어놨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참사 발생 4년 만에야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이날 중간보고회를 열고 참사 당일 지휘 체계의 총체적 부실로 대통령실 지시가 55분간 관계 기관에 전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 관계자들이 업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지시사항 전파를 지연했다는 게 특조위 판단이다.

특조위는 또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고 우려해 ‘참사·희생자’를 각각 ‘사고·사망자’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국무총리 동의와 대통령 보고를 거쳐 용어가 최종 정리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오는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을 직접 조사해 결과를 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구치소 방문 조사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보고 후, 특조위 위원들이 질의응답 없이 자리를 떠나자 유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유족들은 보고회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거의 없고, 정보공개 등도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정회하 기자
2026-10-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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