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음주운전과 물 한 컵

박상숙 기자
박상숙 기자
수정 2026-10-26 00:52
입력 2026-10-26 00:03


193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드렁코미터’(Drunkometer)는 호흡으로 음주운전자를 가려내는 기계였다. 운전자가 풍선에 숨을 불어넣으면 화학약품의 색깔 변화로 알코올 농도를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술 냄새나 걸음걸이로 판단하던 시절엔 획기적이었다.

음주측정기는 갈수록 정교해졌지만, 기계도 속을 때가 있다. 폐에서 나온 숨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입안에 남은 알코올까지 섞이면 실제보다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측정 전 물로 입을 헹구는 것은 이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다. 물 한 컵에도 과학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부터 음주 측정 전에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도록 경찰 내부 지침에 명시했고, 2023년 7월부터 의무화됐다. 하지만 경찰이 이 간단한 절차를 지키지 않아 음주운전 유죄 판결이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2023년 12월 세종시 도로 한복판. 시동을 켠 화물차 운전석에서 잠든 사람이 발견됐다.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는 0.081%. 면허취소 기준을 넘는 수치였다. 운전자는 경찰에 소주를 한 병 넘게 마셨다고 진술했다.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까지 있었다. 1·2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문제는 물 한 컵이었다. 경찰은 측정 전에 입 헹굴 물을 주지 않았고, 이후 한 시간 넘게 재측정도 하지 않았다. 하급심은 술을 마신 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측정 결과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입안에 남은 알코올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음주운전 정황이 뚜렷한데도 처벌하지 못할 수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법이 정한 절차를 어긴 측정 결과는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려면 경찰부터 법을 지켜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법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박상숙 논설위원
2026-10-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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