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파고든 본능적 비평… 문학은 살아있는 염라대왕”

오경진 기자
수정 2026-10-26 00:00
입력 2026-10-25 18:07
한국문학관장·평론가 임헌영
어린 시절 한국전쟁으로 멸문지화문인 간첩단 조작 피해자로 옥살이
친일인명사전 펴내 각종 협박 받아
문학, 시대의 산물… 역사와 궤 같아
나쁜 자가 평생 제재받지 않는 현실
권력 비판이야말로 문학의 ‘몸통’
도준석 전문기자
하고픈 말이 많아서 문학을 했다.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깨달은 것은 문학도 역사와 시대의 소산이라는 사실이다. 국립한국문학관장으로 일하는 문학평론가 임헌영(85·본명 임준열)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공사다망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도, 문인으로서 써야 할 글도 한가득 쌓였다. 노(老)작가가 어린아이와 같은 욕심과 열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얼마 전 임헌영을 만났다. 가벼운 오찬을 겸해 그의 문학과 삶을 들여다봤다.
“시도 쓰고 소설도 써봤는데 잘 안됐어요. 대학에 와서 평론을 처음 써봤는데 학교에서 유명해지더라고요. 문학평론가는 참 고약한 직업이에요. 일생 책을 봐야 하니까. 어머니가 저더러 ‘책 갉아 먹는 좀이었나 보다’ 하시곤 했어요.”
‘임헌영’이라는 이름은 필명이다. 어떤 사람은 ‘헌영’이라는 이름이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의 실질적 당수였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 1956)에게서 따온 것 아니냐고 섣부르게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헌영은 이에 대해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제가 북한을 좋아했으면 오히려 박헌영이라고 짓지 말아야죠. (북한에서) 숙청된 사람이잖아요. 그것과 관계없이 그저 안정된 삶을 바라고 지은 이름이에요. 소년기 삶이 안정되지 못했어요. 라디오 하나 없는 동네에서 자랐고 교과서 외에는 책도 없었거든요. 마루가 넓은 집을 뜻하는 ‘헌’(軒)과 길다는 뜻의 ‘영’(永)을 붙였어요. 안정된 것, 안정된 삶을 원하면서. 그런데 이름과 삶은 반대더라고요.”
그의 말마따나 임헌영의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 6·25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온 집안의 남자들이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그렇지 않으면 북으로 넘어가거나 끌려갔다. 밤이 되면 어머니와 누나들은 울기만 했다. 어린 임헌영 역시 그들과 함께 울었다. 내 삶은 도대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임헌영의 의식에 뿌리 깊게 박힌 의문이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이유다.
“다른 작가들은 글 잘 써서 상을 받고 그랬다지만, 저는 너무나도 할 말이 많았어요. 막 미치겠더라고요. 할 말을 다 하려면 결국 글을 쓸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삶에 한이 많으니까. 밤만 되면 울음 속에서 지내며 같이 울다가 또 달래다가 그랬지요. 그러다가 역사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본능이었죠.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됐을까. 또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역사를 파고들수록 역사와 문학이 함께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삶의 고초는 어린 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고초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문인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문인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로 옥살이했다. 사건 자체가 조작됐음이 밝혀진 게 2009년이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긴 것이 2020년이다. 수십년의 세월을 간첩이라는 낙인과 함께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마냥 한탄하지만은 않는다.
“대신 저는 누구도 할 수 없는 비평을 하게 됐어요. 이론을 배우기 전에 글을 쓰면서 인간 자체가 그렇게 됐다고 할까요. 내 삶의 조건이 내 사고의 틀이 된 것이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시선이 생겼어요. 하나의 사건을 보더라도 그 이면을 생각하게 돼요. 근본을 파고드는 힘이 생긴 것인데, 이것은 살아오면서 본능적으로 얻게 된 것이에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임헌영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반민족행위를 한 인물들을 엄정하게 열거한 이 책으로 임헌영은 숱한 논란과 협박에 직면해야 했다. 심지어는 ‘화형’도 당했다고 한다. 단어를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실제로 그의 이름을 단 인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이뤄진 적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이 작업이 “한국 현대사에서 큰일을 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평생 몸 바친 문학을 임헌영은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이란 한마디로 하면 ‘살아있는 염라대왕’입니다. 염라대왕은 저승에 있죠. 심판은 죽은 뒤에나 이뤄집니다. 나쁜 사람더러 평생 나쁜 일 하라고 놔두는 게 현실이거든요. 살아있는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문학입니다. 사명감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오직 문학이라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그것 역시 문학이긴 하겠지만… 몸통이 아니고 말초겠지요.”
오경진 기자
2026-10-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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