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7개월 넘은 석유 최고가격제 ‘출구 딜레마’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수정 2026-10-25 18:53
입력 2026-10-25 18:53

정유사 손실 보전에 5조 6497억 재정부담… 연말까진 유지

가격 통제 풀면 서민 부담 가중
두바이유 117弗…국내는 23주째 하락
“휘발유 먼저 등 유종별 단계적 폐지를”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23주 연속 하락한 가운데 25일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만남의광장 휴게소 내 주유소에서 이용객들이 주유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중동전쟁으로 치솟는 기름값을 안정시키려고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를 놓고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6개월을 목표로 했던 제도가 7개월을 넘기면서 재정 부담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지만 제도를 종료하면 물가가 확 오를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어떤 출구 전략을 통해 제도 연착륙에 나설지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5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현재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 상한선은 ℓ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지난 6월 말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이후 4개월간 가격을 동결했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후 해제 조건으로 ▲중동전쟁 종료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 ▲국제유가 90달러대 안착 등을 제시했다.

현재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지속되고 국제유가도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제도 해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배럴당 60~70달러대로 안정됐던 국제유가는 지난 23일 기준 두바이유가 116.9달러로 일주일 새 10.3% 급등했고 브렌트유 116.7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3.3달러까지 올랐다.

최고가격제의 효과는 입증됐다. 국제유가 급등에도 국내 기름값은 23주 연속 하락했다. 10월 셋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857.1원, 경유는 1842.5원을 기록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23일 보고서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보통휘발유가 비규제 대상인 고급휘발유보다 ℓ당 최대 239.5원 낮아지는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주유소 기름값 23주 연속 하락…휘발유·경유 1천800원대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전주 대비 소폭 내리며 2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18∼22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주보다 L당 0.5원 내린 1857.1원이었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와 비교해 0.3원 내린 1842.5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0.8% 포인트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평균 기름값은 ℓ당 휘발유 1850원대, 경유 1840원대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은 2000원대 미만의 가격으로 주유하며 가계 부담을 덜고 있다.

문제는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6개월 운영한다고 가정하고 정유사 손실 보전 예산으로 예비비 4조 2000억원을 편성했다. 이후 올해 4분기까지 연장될 것을 고려해 내년 예산안에 1조 4497억원을 반영했다. 손실 보전 예산이 총 5조 6497억원까지 늘어난 것이다.

앞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2일 “최고가격제는 일시적으로 소비자 물가 억제 효과가 있지만, 오래 지속될수록 가격 구조가 왜곡되고 장기적으로 재정에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장기화로 인한 재정 부담과 휘발유 소비 증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주유소 기름값 23주 연속 하락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전주 대비 소폭 내리며 2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18∼22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주보다 L당 0.5원 내린 1857.1원이었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와 비교해 0.3원 내린 1842.5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그렇다고 당장 최고가격제를 해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9월 석유류 물가가 전년보다 14.8% 오른 데다 국제유가 상승분까지 반영되면 서민 부담이 확 늘어날 수 있다. ℓ당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다시 2000원대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는 “중동 전쟁과 고유가가 지속되는 만큼 국내 수급과 국제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 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상 상황이 새로운 정상이 된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출구 전략을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말까진 제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유류 소비량이 늘어나는 겨울철에 ‘난방비 폭탄’ 논란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석유 최고가격제를 일시에 폐지하기보다 유종별 단계적 폐지와 필수 운송 차량, 취약계층 선별 지원을 제안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고가격제 장기화는 석유 소비를 부추기고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한 달 간 예고 기간을 거쳐 대중교통으로 대체 가능한 휘발유부터 가격 상한을 완화해 폐지하고, 생계형 연료인 경유는 2~3개월 유예, 서민 난방 연료인 등유는 겨울철 부담을 고려해 내년 2월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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