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전 짜장면 특식이 정석?… 자칫하면 가을 시즌 망쳐요[박성국의 러닝 보급소]

박성국 기자
박성국 기자
수정 2026-10-23 00:14
입력 2026-10-23 00:14

역효과 우려 큰 ‘카보로딩’ 요법

체내 필요 이상 글리코겐 저장 전략
대회 임박 탄수화물 위주 식사 퍼져
1960년대 고안… 운동 과학과 거리
“입문자 면역력 저하 등 위험 크다”

동호인들 평소 식사 리듬 유지하고
익숙한 밥·빵·감자 등 섭취 현실적
지방 많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마라톤의 ‘살아 있는 전설’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9년 10월 1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브레이킹 2’(2시간 이내 완주) 이벤트 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뒤에 두고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킵초게가 대회 당일 ‘오트밀 식사’를 한다고 밝히면서 유럽에서는 오트밀 제품 판매가 급증하기도 했다.
빈 AP 연합뉴스


국내 마라톤 대회 참가 인구가 급증하면서 해마다 10월 중순이면 ‘특식’ 준비를 위해 직접 장보기에 나서는 남성도 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은 주로 소고기와 장어를 장바구니에 담고, 간편 조리용 닭가슴살 제품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그리고 이들의 장바구니에 빠지지 않는 품목으로 이온 음료 1.5리터 1병, 가공 옥수수 캔이 포함됐다. 저마다 결연한 의지를 담은 ‘카보로딩 식단’을 위한 구성이다.

스포츠 생리학에서 카보로딩(Carbo-loading)은 장거리·고강도 운동에 대비해 체내에 필요 이상의 탄수화물을 저장하는 식이 전략을 의미한다. 42.195㎞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물론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사이클과 수영 등에서도 엘리트 선수들이 단 1초라도 기록을 줄이기 위해 대회 직전 이런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카보로딩은 고강도 신체 활동에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글리코겐’을 간과 근육에 쌓아두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밥과 빵, 면 등으로 섭취한 탄수화물은 소화 과정을 거쳐 주로 포도당 형태로 이용되고, 당장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않는 일부는 글리코겐 형태로 체내에 저장된다. 이를테면 비상용 에너지원으로 몸에 비축해 두는 개념이다.

마라톤 완주 경험이 있거나 생애 첫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진짜 마라톤은 32㎞ 지점부터가 시작’이라는 말도 글리코겐 저장과 활용에서 유래했다. 실제 풀코스를 달리다 보면 32㎞ 지점을 전후로 걷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다리 근육 경련 등을 호소하며 주로를 벗어나 인도에 누워 있거나 레이스를 포기하는 주자를 쉽게 목격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글리코겐의 체내 저장 용량은 제한적이고, 대부분 30㎞를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저장된 글리코겐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흔히 30㎞ 이후부터 ‘벽에 부딪혔다’거나 ‘다리가 잠긴다’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된 개념이 이른바 ‘고갈주’다. 대회를 약 일주일 앞두고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 강도 높은 달리기 훈련을 병행해 글리코겐을 완전히 태워 없앤 뒤 대회에 임박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몸을 글리코겐 부족 상태로 유지한 뒤 다시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신체가 평소 저장량 이상으로 글리코겐을 쌓아두는 ‘초과 보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이런 식이요법의 핵심이다.



한국 동호인들이 대회 전날 즐겨 먹는 짜장면.
서울신문 DB


예를 들어 다가오는 일요일이 대회 당일이라면 그 주 월요일 아침 식사부터 목요일 저녁 식사까지는 탄수화물 없이 고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체내 글리코겐이 바닥난 금요일부터는 탄수화물 섭취를 평소 식사량보다 크게 늘리는 방식이 동호인들 사이에선 ‘정공법’처럼 퍼져 있다. 국내에선 메이저 대회를 앞둔 이틀간은 중국집 매출이 폭등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구권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대회 직전 파스타가 마라톤 완주와 기록 경신을 위한 인기 메뉴로 꼽힌다. 마라톤의 ‘살아있는 전설’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대회 당일 주식으로 “오트밀로 식사를 한다”고 공개하면서 유럽에서는 큰 대회를 앞두고 오트밀 제품이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식이요법은 1960년대에 전문 선수들을 위해 고안된 낡은 방식이어서 급속도로 발달한 현대 운동생리학과는 거리가 있고,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해 풀코스 완주나 기록에 욕심이 생긴 일반 동호인이 따라 하기엔 역효과의 우려가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운동생리학 박사인 이윤희 파워스포츠과학연구소 대표는 “전통적인 방식의 카보로딩은 전문 엘리트 선수는 물론 오랜 경험과 데이터를 쌓은 마스터즈 최상위권 주자에게는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는 있다”라면서도 “마라톤 입문자나 완주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은 면역력 저하로 대회 자체를 그르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카보로딩은 결국 글리코겐 초과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글리코겐의 주된 저장 공간이 근육이다”면서 “마라톤을 아주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꾸준히 수련해오지 않은 사람은 이를 저장할 근육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근력 운동으로 저장 공간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동호인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대회 직전까지 평소 식사 리듬을 유지하면서 마지막 1~2일에는 밥과 빵, 감자, 바나나 등 익숙한 탄수화물 식품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지방이 많거나 지나치게 맵고 자극적인 음식, 평소 먹지 않던 보충제는 피하는 게 대회 당일 ‘변수’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다. 대회 당일 식사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먹는 게 컨디션 유지에 도움이 된다.

박성국 문화체육부 기자
2026-10-23 B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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