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보안 패치 배포…유럽 일부 정부기관 웹사이트 운영 중단
정부, 사이버위기경보 ‘주의’…침해대응 인력·비상출동 체계 강화
인공지능(AI)이 발견한 보안 취약점 하나에 세계 각국이 선제적으로 웹사이트를 멈춰 세울 만큼 큰 파장이 일었다. 전 세계 웹사이트의 75% 이상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 ‘PHP’에서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자 해킹 비상에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 정부도 사이버 보안 대응에 나섰다. 국내에 PHP를 사용하는 인터넷 서버는 약 11만개에 달한다. 이번 취약점이 AI를 통해 발견되고 실제 악용 시도까지 확인되면서, AI가 전 세계 사이버 보안 질서를 뒤흔드는 변수로 떠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로이터통신 등은 21일(현지시간) 웹사이트 개발에 널리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PHP’ 개발진이 두 건의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을 수정한 새 버전을 이날 긴급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PHP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사용자가 검색창에 특정어를 입력하면 PHP가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정보를 찾아오고 홈페이지에서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해커가 PHP의 취약점을 악용하면 별도 로그인이나 인증 절차 없이 중간에서 임의로 악성코드를 실행하거나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취약점은 국제 보안 취약점 평가 체계(CVSS) 4.0을 기준으로, 10점 만점에 9.2점이다. 이는 가장 높은 단계인 ‘치명적’ 등급이다. 특히 사용 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의 약 75%가 PHP를 사용하고 있어 광범위한 사이버 공격으로 퍼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AI가 사이버 보안의 공격과 방어 양쪽을 동시에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보안 위기로 주목받고 있다. 우선 사이버 보안업체 캘리프는 오픈AI의 모델 ‘GPT-5.6 솔(Sol)’을 이용해 PHP의 취약점을 찾아냈다. 과거에도 해당 결함은 잠재적인 문제로 지적됐지만, AI를 통해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으로 전해졌다.
AI가 인간이 놓쳤던 결함을 찾아내 방어 능력을 높인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해커들이 취약점을 분석하고 공격 도구를 만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 실제 아마존은 자체 위협 탐지 시스템 ‘매드팟(MadPot)’을 통해 취약점이 공개되기 나흘 전부터 공격 시도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PHP의 보안 취약점 패치가 공식 발표 전에 공개되면서 해킹 위험이 더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PHP 개발과 유지·보수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PHP 재단은 이날 패치 배포업체 ‘체인가드’가 공식 배포 예정 시각보다 6시간 이상 일찍 패치가 적용된 이미지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PHP 재단 개발진이 보안 결함을 고친 뒤에 패치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이런 계획이 무산되면서 공격자들이 기존 코드와 패치 코드를 비교해 취약점을 파악할 시간을 벌었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은 선제적 ‘오프라인 전환’을 권고하며 대응에 나섰다. 미국 당국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PHP를 사용하는 모든 기관과 기업은 즉각적인 업데이트에 나서고 불가능하다면 취약점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해당 시스템을 오프라인 상태로 전환하라”고 공지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 정부 기관은 예방 차원에서 웹사이트 운영을 중단했으며 유럽과 일본, 호주 등의 사이버 보안 당국도 긴급 업데이트를 권고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 웹사이트가 위험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안랩에 따르면 인터넷에 공개된 서버 정보를 분석한 결과, 취약한 PHP 버전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서버가 약 11만건으로 집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22일 정오부터 PHP의 보안 취약점에 대응해 민간 분야 사이버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침해 대응 인력을 늘리고 비상출동조를 상시 대기시키는 등 비상대응 체계가 본격 가동됐다.
서울 송수연·세종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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