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만에 다시 드는 조각도… 해인사, 21세기 대장경 새긴다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10-22 00:42
입력 2026-10-22 00:42
해인사 판각학교 참가자가 조각도로 목판에 글자를 하나씩 새기고 있다.
해인사 제공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손으로 팔만대장경을 다시 새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법보종찰 해인사가 800년 전 팔만대장경 조성에 담긴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는 ‘대장경 판각 조성’의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한다. 팔만대장경을 만들 당시 방식을 재현해 새로운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것으로, 완성까지 10년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해인사는 오는 29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 법계탑 마당에서 ‘해인사 장경도감 대장경 판각 고불식’을 봉행한다. 고불식에는 조계종 주요 스님과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등 정부·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주제는 ‘다시 새기는 대장경, 인류를 향하다’로 정했다.


대한민국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은 13세기 고려시대 제작됐다. 몽골의 침략으로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백성의 평안과 위기 극복을 발원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목판에 새겼다. 정식 명칭은 ‘해인사 대장경판’ 또는 ‘고려대장경’이지만, 대장경판의 개수가 8만 1352장이라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이번 대장경 판각 조성은 과거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21세기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전쟁과 갈등,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공동체의 단절 등 인류 공동의 위기에 맞서 인간 정신의 회복을 내세운다. 해인사 주지인 혜일 스님은 “8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대장경을 새겼다면, 오늘 우리는 사람과 생명, 평화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다시 대장경을 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통의 기술을 후대에 전승하는 데에도 이번 사업의 가치가 있다는 게 해인사의 설명이다. 해인사 판각학교는 팔만대장경에 담긴 정신을 이해하고 전통 판각기술을 익혀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스님과 교육생들이 직접 나무를 다듬고 조각도를 잡아 목판에 한 글자씩 새기며 그 안에 담긴 수행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해인사는 고불식 당일 만일기도 입재, 법보전 판각 시연 등을 진행한다. 앞으로도 판각기술 교육과 전승, 기록과 연구, 디지털 아카이브, 국민 참여, 국제교류 등을 통해 팔만대장경을 과거에 머문 문화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명유산’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오경진 기자
2026-10-22 14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