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사진의 첫 문장] 우리 땅의 상흔을 찾아서

수정 2026-10-20 00:41
입력 2026-10-20 00:02
박종우 ‘흔’ 경기도 연천. 2010.


망초꽃 흐드러진 들판, 모래와 자갈밭이 유순하게 흐르는 강변,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와 갯벌, 둥그스름한 해안선, 야트막한 산자락. 박종우의 사진 시리즈 ‘흔’에 담긴 산과 강, 해변의 모양새, 숲의 식생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라도 알아볼 이 땅의 익숙한 자연 풍경이다.

그런데 거기 낯선 인공의 구조물들이 끼어든다. 겹겹이 겹을 이룬 가시철조망들이 산 능선에 빗금을 긋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잔잔한 강물에 발을 담근 채 결계를 이루고 있다. 수면 위로 날을 세운 쇠침들에는 얼마나 오래였던지 다닥다닥 따개비가 붙어 있다. 참나무낙엽들 사이에 은닉된 것은 탄피들이다.


너무나도 익히 아는 우리 산하의 풍경이기에, 거기에 놓인 사물들의 이물감이 아프게 통각을 건드린다. 풍경이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더하다. 모두가 한반도에 산재해 있는 ‘분단흔’이다.

박종우는 한국전쟁 휴전 60년 만에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내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이 드문 기록은 세계적 명성의 독일 출판사 슈타이들에서 사진집으로도 출간되었다.

이후 ‘임진강’ 등 한반도의 분단과 관련된 연작으로 작업을 확장한 박종우는, 한국전쟁으로 도로와 하천, 해안선에 조성되었던 용치, 방호벽 등 대전차장애물과 해안철책들을 찾아다녔다. 국가이데올로기에 의해 생겨났으나 쓸모없어진 채 풍화되어 가고 있는 방어시설물을 조명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작업이 사진 시리즈 흔으로 묶였고, 2024년에 일부가 전시로 선보여졌다.



사실의 기록자로서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업들을 이어 온 그가 흔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화법으로 분단 풍경을 이야기한다. 큐레이터 최연하가 “서사를 드러내기보다는 다만 말없이 펼쳐진 풍경으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 그 자체를 감각게 한다”고 표현한 방식이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곧 그런 감각이다.

제목 흔은 분단이 남긴 표시나 자취라는 의미에서의 흔(痕)이다. 또 그것이 아직도 우리나라의 여전한 ‘흔한 풍경’이라는 점에서 흔이기도 하다.

박미경 류가헌 갤러리 관장

박미경 류가헌 갤러리 관장
2026-10-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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