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외관 5000장 찍어 검사하고 로봇 동선 AI가 설계…현대차그룹, ‘스스로 움직이는 공장’ 만든다

하종훈 기자
수정 2026-10-18 17:53
입력 2026-10-18 11:14
비전 시스템 95% 외부 의존…핵심기술 내재화
1700개 용접점 로봇 경로 AI가 자동 생성
물류로봇 표준화로 제작비 30% 절감
울산 EV공장서 제조 AI ‘폴라리스’ 시범운영
2032년 이후 휴머노이드·자율화 본격 적용
현대차그룹 제공
아치형 터널 안으로 기아의 목적기반차량(PBV) PV5가 천천히 들어섰다. 천장과 양옆에 빼곡하게 설치된 카메라가 차체를 훑자 옆 모니터의 차량 전개도에 외관 결함의 위치와 크기가 표시됐다. 차량 한 대를 검사하면서 촬영하는 초고해상도 이미지만 약 5000장이다. 사람이 육안으로 차체를 살피는 대신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이 흠집과 이상을 찾아내는 ‘터널형 외관검사’ 기술이다.
조금 뒤 차체 용접 구역에서는 AI가 로봇의 ‘길’을 만들었다. 연구진이 차체 위치를 일부러 틀어놓자 3차원 비전 센서가 바뀐 위치를 읽었고, AI가 새 이동 경로를 계산했다. 용접건을 단 로봇 팔은 목표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오차를 보정한 뒤 저장된 경로를 따라 끊김 없이 움직였다. 용접은 이미 로봇이 하지만 로봇에게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가르치는 일까지 AI에 맡긴 것이다.
19~21일 열리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6’ 본행사를 앞두고 지난 16일 경기 의왕시 현대차·기아 의왕연구소에서 공개된 기술들은 겉으로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향하는 곳은 같았다. 외부 업체에 의존하거나 공장마다 따로 개발해 온 제조기술을 직접 확보하고 표준화한 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연결해, 공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최적화하는 ‘자율운영공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반이 현대차·기아가 추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이다.
현대차·기아가 핵심 제조기술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 배경에는 외부 기술 의존에 따른 한계가 있었다. 이동현 비전TFT 책임은 “국내 현대차·기아 공장에 적용된 비전 시스템을 전수조사한 결과 95% 이상이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차종 추가나 설계 변경 때마다 업체 기술에 묶이는 ‘락인’으로 투자비가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기아는 이를 줄이기 위해 광학계와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내재화했다. 이날 선보인 터널형 외관검사도 그 결과물이다.
현대차그룹 제공
로봇의 이동 경로를 설정하는 작업도 같은 흐름이다. 현대차 차체 공정에서는 1700개가 넘는 지점을 로봇이 자동으로 용접하지만 각 용접점까지 이동하는 경로는 생산라인 설치 때 엔지니어가 일일이 입력해 왔다. 새 기술은 AI가 경로를 자동 생성하고 가상공간과 실제 공장 사이의 오차를 보정해 로봇 끝단이 목표 용접점에 1㎜ 이내로 도달하도록 한다. 이인환 제조SI기술개발2팀 책임매니저는 “현재 현대차에서 100% 내재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는 내년 6월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부품을 운반하는 물류로봇도 프로젝트마다 따로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하드웨어 설계와 주행 소프트웨어를 표준화·내재화해 제조업체가 달라도 같은 성능과 품질을 내도록 했다. 회사 측은 이를 통해 물류로봇 제작비를 약 30% 줄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튬티타네이트산화물(LTO)과 리튬이온 배터리를 결합해 기존 약 2시간이던 충전시간도 최대 12분 수준으로 줄였다.
현대차그룹 제공
모든 제조기술을 혼자 개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분야에서는 외부 전문기업과 협업한다. 현대차·기아는 엔비디아와 중력·마찰·충돌 등 실제 물리현상을 반영한 ‘가상 시운전’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실제 설비를 설치한 뒤 발견하던 문제를 가상공간에서 먼저 검증해 신차 생산 준비에 걸리는 시간과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것이다.
개별 기술을 연결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된다. 기존에는 공장마다 시스템을 따로 개발하면서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중복 투자가 생겼으며 데이터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최영태 현대차·기아 이포레스트센터장(상무)는 이를 공장별 ‘사일로’라고 표현했다. 현대차·기아는 이를 하나의 표준 제조 플랫폼으로 묶어 한 공장에서 개발한 기술과 데이터를 다른 국내외 공장에서도 활용하는 SDF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AI는 이미 실제 생산현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조 특화 AI 에이전트 ‘폴라리스’는 지난 9월 울산 EV공장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생산·품질·설비 시스템에 흩어진 정보를 통합 분석하고 사내 문서와 전문가의 노하우를 찾아 엔지니어의 판단을 돕는다. 분석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거나 이메일과 사내 협업 시스템으로 공유하는 업무도 지원한다.
현대차·기아가 최종적으로 그리고 있는 자율운영공장은 사람이 사라진 무인공장은 아니다. 신차 개발부터 생산계획, 공장 운영, 판매 이후 품질 문제까지 데이터를 연결하고 AI가 분석과 판단을 지원하며 로봇은 위험하거나 반복적인 일을 맡는 제조환경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에서 가상 기반 자율화 제조시스템을 고도화하고, 2032년 이후 미래 신공장에는 휴머노이드와 풀스케일 자율화 기술을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최 상무는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하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제조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는 19~21일 의왕연구소에서 열리는 본행사에서 약 200건의 제조 신기술을 선보인다. 차량 한 대를 5000장의 이미지로 살피는 ‘눈’과 용접 로봇의 이동 경로를 만드는 AI ‘두뇌’를 하나의 소프트웨어 체계로 연결해, 자동차뿐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하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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