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 국산화하라더니 계열사 생산은 제외…약가 우대의 역설

이현정 기자
수정 2026-10-16 16:53
입력 2026-10-16 16:53
원료 자급화 외치면서…계열사가 만든 국산 원료는 우대 제외
복지부는 “지원 강화”, 심평원은 ‘자기 제조소’만 인정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중국과 인도가 원료 수출을 제한하면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가 품귀를 빚었다. 의약품 원료 자급화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원료직접생산의약품 약가 우대’ 제도는 경직된 규제에 막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에서 “악용을 막겠다는 목적에만 매몰된 과도한 규제가 제도의 존립 취지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원료직접생산의약품 약가 우대는 원료를 직접 합성한 의약품에 약가 혜택을 주는 제도다. 국내 원료 생산을 늘려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비상시에도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어느 법인 제조소냐’가 혜택 가른다쟁점은 원료 직접생산의 인정 범위다. 2017년 5월 4일 이전에는 의약품 결정 신청 회사와 원료 생산 회사가 지배·종속 관계일 때 일정 요건을 갖추면 약가 가산을 인정했다. 지배회사나 종속회사가 직접 생산한 원료를 공급받아 완제품을 만드는 경우도 대상이었다.
그러나 2017년 일부 제약사의 제도 악용을 막겠다며 규정을 개정하면서 범위가 좁아졌다. 지금은 ‘품목허가권자 자신의 제조소’에서 화학적 변형 단계를 포함해 원료를 합성한 의약품만 혜택을 받는다. 국내에서 원료를 만들었더라도 자회사나 계열사가 생산했다면 우대를 받을 수 없다.
백 의원은 이런 기준이 원료와 완제품 생산을 계열사끼리 나눠 맡는 제약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원료를 국내에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느 법인의 제조소에서 만들었는지가 혜택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백 의원은 “국내 대부분 제약사가 그룹·계열사 구조여서 현행 ‘자기의 제조소’ 기준에 맞는 기업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지원 강화”, 심평원 기준은 정반대정부 정책과 현장 집행 사이의 엇박자도 도마에 올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스타트업과 혁신형 제약기업 사이의 도약형(준혁신형) 기업에 실효성 있는 약가 및 지원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 의원은 심평원의 약가 우대 기준이 이런 방침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국내 원료 생산을 장려한다면서 정작 계열사가 만든 원료에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후 점검도 미흡했다. 백 의원실에 따르면 심평원 약가산정부와 약제평가부는 2017년 규정 개정 이후 별도의 실태조사나 현황 파악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등록 품목을 심사할 때도 자회사나 계열사가 만든 원료를 쓴 의약품은 우대 대상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백 의원은 먼저 약가 우대 적용 품목의 현황과 제도 운영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기업의 자진신고를 의무화해 투명성을 높이고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현장 의견을 제도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백 의원은 “제도를 악용하는 얌체 행태는 철저히 차단하되 원료 자급화라는 근본 취지는 살려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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