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러, 한국인 배우 ‘북한군 영웅’ 역 출연 발표…배우 측 “동의한 적 없다”

권윤희 기자
수정 2026-10-16 14:54
입력 2026-10-16 14:54
러 문화부 심사서 이혁중 북한군 역 소개
“내년 8월 개봉목표” AI 생성 예고편 공개
사전녹화 영상엔 “이 프로젝트서 연기 영광”
배우측 “작품·배역 몰라…출연 동의 안 해”
“북한군역 맡을 생각 없어, 영상삭제 요청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영화의 출연자로 한국인 배우 이혁중(35)을 내세웠지만, 정작 배우 측은 출연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 제작사가 국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심사에서 사전 협의 없이 배우의 얼굴과 영상을 활용했다는 주장이다.
이혁중 측 “작품·배역 설명 못 들어…오디션 영상만 전달”이혁중의 한국 소속사인 세나이엔티(SCENA)는 15일 서울신문에 배우가 러시아 현지 에이전시에 오디션용 연기 영상을 전달했을 뿐, 해당 영화의 시나리오나 북한군 배역에 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출연을 승낙하거나 계약한 사실도 없다는 입장이다.
배우 측에 따르면 이혁중은 지난주 현지 에이전시에 일반적인 오디션용 연기 영상을 보냈고, 현지 에이전시는 이를 영화 제작사에 전달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이혁중 측에 사전 통보하거나 출연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해당 영상을 영화 제작 지원 심사에 활용했다는 것이 배우 측 설명이다.
세나이엔티 관계자는 “이혁중 배우도 기사를 보고 관련 내용을 인지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혁중은 해당 영화에 출연할 의사가 없으며 북한군 병사 역할을 맡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고 전했다. 배우가 현지 에이전시에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고도 전했다.
심사 영상선 “연기하는 것은 영광”…촬영·사용 경위 미확인앞서 러시아 영화 제작자 바딤 올레이니크는 13일 러시아 문화부의 영화 제작 지원 심사에서 전쟁영화 ‘수자. 전우들’(Суджа. Братья по оружию)의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 영화사 ‘브레먀 키노’와 ‘보엔필름’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작품으로, 2027년 8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이혁중을 북한군 정찰병 ‘조선’ 역의 출연자로 소개했다. 러시아 영화 전문매체 DOC.ru도 이혁중이 북한 특수부대원 가운데 한 명을 연기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제작진은 출연 예정 배우들의 사전 녹화 영상도 공개했는데, 해당 영상에는 이혁중이 러시아어로 “이 프로젝트에서 연기하는 것은 제게 영광입니다”(Сыграть в этом проекте — это честь для меня)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아무리 힘을 내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 곁에서 누군가의 어깨를 느낀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어깨를 맞대고 함께한다면 아무리 험준한 산도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된다”며 “관객들이 내가 연기하는 인물을 통해 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가슴 깊이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영상 속 ‘이 프로젝트’가 영화 ‘수자’를 가리키는지, 영상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촬영됐고 제작사에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해당 발언과 촬영 경위에 관해 이혁중 측에 추가 설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공동제작사 보엔필름과 이혁중의 현지 에이전시 측에도 출연 발표 근거와 영상 사용 경위 등에 관한 설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문화부의 영화 제작 지원이 확정됐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러 제작진, 북한군 영웅적 참전 묘사 예정…현지서도 과장 논란제작사에 따르면 영화는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쿠르스크주 진입부터 이듬해 3월 러시아군의 국경도시 수자 탈환까지의 전투를 배경으로 북한군의 참전과 러시아군과의 협력을 그린다.
인공지능(AI) 생성 예고편에는 북한군 병사가 “이건 네 전쟁이 아니야”라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쿠르스크에는 자신이 “필요하다”며 참전을 결심하고, 전투 중 러시아군 병사를 구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올레이니크는 쿠르스크에서 전사한 북한군 병사들의 영웅적 모습을 그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문화부 고문 일리야 스포냐크는 북한군이 전투 초기부터 참전한 것처럼 대본이 구성됐다며 실제 전투에서 북한군의 역할을 과장했다고 지적했다.
올레이니크는 러시아 국방부가 대본을 승인했다며 반박했다.
배우 이혁중은 누구?이혁중은 1991년생으로, 서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2018년 러시아로 건너가 모스크바의 러시아 연극예술대학(GITIS)에서 연기를 공부한 한국 국적 배우다. 2022년 졸업한 뒤 러시아에서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에 출연했다.
러시아 에이전시 등록 프로필에는 ‘마샤+첸=전쟁’, ‘폴랴르니 4’, ‘슈퍼 이바노프 가족 2’, ‘다이테 쇼’ 등이 주요 출연작으로 올라 있다.
그는 2022년 GITIS 공식 인터뷰에서 러시아 무대에서 외국인이 아닌 배우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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