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마음 만보(萬步)]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마음

수정 2026-10-16 02:53
입력 2026-10-16 02:53
입국심사장 멀리서 여권을 들고 향하는 나를 출입국 직원이 얼른 자기에게 오라고 반갑게 손짓한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여권 색깔이란다. 저 옆으로 한국인 승무원들이 출국 수속을 하기 위해 검사대에 서 있다.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어울릴 법한 직원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유니폼이라고 치켜세우는 바람에 모든 사람이 쳐다보느라 난리다. 해외 공항에서도 한국인은 인기다.

해외에서 작가 레지던시가 열리는 첫날, 각국에서 모인 작가들이 통성명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에서 한 싱가포르 작가가 대뜸 한국어로 나에게 묻는다. “나 형? You 형님?” 도대체 이런 한국어 실력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독일 어느 작은 도시의 한국 식당에서는 단지 된장찌개를 먹기 위해 대학생들이 줄 서 있었고, 네덜란드의 어느 작은 도시에는 유리창에 붉은 페인트로 ‘삼겹살’이라고 써놓고 소주를 파는 식당이 있는데 식당 안 열기들로 보아 그 도시에서 가장 핫한 식당임이 분명했다. 단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통째로 싸서 입에 넣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럴 때면 내가 태어나 사는 한국에, 내가 모르는 뭐가 있나? 싶다. 이 모두가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을 애정 혹은 환상을 섞어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일 텐데…. 영화가 시작되고 보니 로마 배경의 이탈리아 영화였다. 영화 속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은 쓸쓸히 집으로 들어가던 중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납작한 종이 마네킹을 집으로 가져간다. 남자로 만들어진 마네킹이 어떤 인물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고 집에 들였던 여주인공은 어느 날 마네킹 뒤에 적힌 이름을 발견하고 검색을 시작한다. 마네킹의 정체는 월드 스타인 보이 그룹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영상 하나가 화면에 겹쳐 떠오르고 이번엔 마네킹이 아닌 실제 사람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시작된다. 인터뷰는 한국말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는 언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귓등까지 활짝 열리고 말았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여주인공은 초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영화 속 생활 곳곳에 한국어가 배치된다. 심지어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질 그날을 대비해 주변 사람들에게 멀리 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어디로 여행을 가는데?”라고 물으면 한국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한국’이라는 상징은 바로 삶의 방향이 된다. 그야말로 이상향인 것이다. 우리의 무엇이 그들을 열광하게 하고 있는 걸까. 최근 유네스코에서는 대대적으로 ‘한국의 힘’을 연구하기 위해 특별팀을 꾸렸다.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세계인들이 한국앓이를 하고 있는 현상은 연구 이상의 연구라는 생각이다. 이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상상력이 가동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상상력이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일단은 그들의 환호에 앞서 우리가 큰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속이야 거울로 들여다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병률 시인

이병률 시인
2026-10-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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