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관심도 없었는데… 예순에 든 붓, 구순까지 잡았네요”

강동삼 기자
수정 2026-10-15 09:40
입력 2026-10-15 09:40
15~18일 돌담갤러리서 박병선 화가 구순 기념 문인화 회고전
자녀들 모두 떠나고 적적해진 쉰다섯, 친구 권유로 예술의 길
열 살 때 살았던 집터서 전시… “예순에 든 붓, 서른 해 기록”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제 시간이 생기면서 취미로 시작했는데, 먹을 갈고 붓을 움직이는 게 참 재미있고 보람 있더라고요.”
아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붓을 놓지 않은 문인화가 금정(錦丁) 박병선(89)씨가 구순 기념 문인화 회고전 ‘예순에 든 붓, 서른 해의 기록’은 15일부터 18일까지 제주시 돌담갤러리에서 연다며 이같이 밝혔다.
쉰다섯에 서예를 시작하고 예순부터 본격적으로 문인화 작업에 나선 그에게 30년의 작품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인 셈이다.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박씨는 해방 직후인 1945년 가족과 함께 제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이번 전시장이 들어선 곳은 그가 열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살았던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옛집 터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에서 약 80년 만에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게 된 셈이다.
박 화가의 그림 인생은 처음부터 계획된 길이 아니었다. 여섯 남매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의 취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막내인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자녀들이 하나둘 서울로 공부하러 떠났고, 집에는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친구의 권유로 문인화를 구경하러 갔다가 붓을 잡게 됐다. 제주 향토음식 명인 김지순씨가 친구로서 건넨 권유가 계기였다. 그림에 특별한 관심도,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새로운 취미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박 화가는 먼저 서예를 배우고 문인화에 입문했다. 서예는 석산 강창화 선생에게, 문인화는 치련 허의득 선생에게 배웠다. 이후 허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자인 소석 구지회 선생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구 선생은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를 찾아왔다.
박 화가의 딸 고은숙(전 제주관광공사 사장)씨는 “어머니는 그전까지 그림을 직접 그려본 적이 거의 없었고, 특별히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으셨다”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게 살다가 자녀들이 독립하면서 시간이 생겼고, 친구를 따라갔다가 시작한 일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구순잔치를 하는 것보다 구순에 전시회를 여는게 의미있는 것 같아 권유했다”며 “최근 건강 문제로 입원과 응급실 방문을 겪으면서 전시를 열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구순을 맞아 그동안의 작품을 정리하자는 의미로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붓을 잡은 뒤 달라진 것은 그림만이 아니었다. 작품 활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졌다. 다만 정작 박 씨는 자신의 작품을 대단하게 평가하는 주변의 칭찬을 쑥스러워한다고 한다.
막내딸 고혜정씨는 “어머니는 그저 여가를 보내려고 시작한 일인데 주변에서 칭찬할때마다 부끄러워하고 부담스러워하신다”며 “자녀들 입장에서는 그 나이에도 꾸준히 붓을 놓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오신 어머니가 무척 자랑스럽다. 더욱이 어머니에게 추억이 많은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2005년 3인전 ‘삼우전(三友展)’과 2015년 첫 개인전 ‘흔적’, 2023년 두 번째 개인전 ‘자연을 품다’에 선보였던 대표작들이 시기별로 소개된다. 꽃과 새, 나무와 물고기 등 자연을 소재로 한 문인화와 화제(畵題) 글씨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작품에는 세월에 따른 변화도 담겼다. 2005년에는 자연에 마음속 이야기를 담았고, 2015년에는 한층 힘 있는 붓질과 밝아진 색채를 선보였다. 2023년에는 큰 화폭을 다루기 어려워지면서 소품 위주로 작업했지만, 붓의 움직임은 오히려 한층 자유로워졌다.
박씨는 “전시작품들은 잘된 것도 있고 서툰 것도 있다.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어놓았다”며 “제가 지나온 길”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15일 개막해 18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마지막 날은 오후 4시까지다. 관람료는 무료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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