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소득 없었는데…“일찍 결혼했으니 연금 못 냅니다?”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수정 2026-10-14 08:29
입력 2026-10-14 08:26

첫 보험료 낸 적 없는 여성 23만 9291명
미혼 때 미룬 보험료는 추납…전업주부 기간은 불가
공단도 “불합리” 인정…‘1인 1연금’ 전환 요구

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세에 결혼해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A씨는 59세에 국민연금공단 창구를 찾았다. 연금을 매달 받기 위한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려고 과거에 내지 못한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는 ‘추후납부(추납)’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혼 전 일한 적이 없어 ‘첫 보험료 납부 이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37세에 결혼한 B씨는 사정이 달랐다. 27세부터 결혼 전까지 약 10년간 납부를 미뤄둔 보험료를 추납해 매달 연금을 받을 자격을 얻었다. 두 사람 모두 소득이 없었지만 결혼을 일찍 했다는 이유 하나로 노후 안전망의 문턱에서 엇갈린 것이다.


‘납부예외’ 미혼자, ‘적용제외’ 전업주부이런 불합리한 차이는 국민연금이 소득 없는 미혼자와 기혼자를 다르게 관리하는 낡은 기준에서 비롯된다. 현행 제도에서 소득 없는 미혼자는 27세가 되면 가입 자격을 부여받고 보험료 납부만 미루는 ‘납부예외자’로 분류된다. 반면 소득 있는 배우자를 둔 전업주부는 가입 대상에서 아예 빠지는 ‘적용제외자’가 된다. ‘배우자가 연금을 내니 거기에 기대라’는 가구 중심의 시각이 전업주부의 독립적인 노후 권리를 가입 단계부터 막고 있는 셈이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27~59세 국민연금 적용제외자는 385만 7798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보험료를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여성은 23만 9291명이다. 이들은 뒤늦게 가입하더라도 첫 보험료 납부 이전에 소득 없는 배우자로 지낸 기간은 추납할 수 없다. 노후가 코앞인 40~50대가 17만 6761명(40대 7만 8205명, 50대 9만 855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민연금을 매달 받으려면 보험료 납부 기간이 최소 10년(120개월)이어야 한다. 가입 기간이 부족한 사람은 추납으로 수급 자격을 갖추거나 연금액을 늘릴 수 있으며 추납 가능 기간은 최대 119개월이다. B씨의 경우 현재 보험료 한 달 치를 내고 과거 119개월 치를 추납하면 최소 가입 기간 120개월을 채울 수 있다.



보험료 내고 싶어도…첫 납부 전 기간은 추납 불가문제는 과거에 어떤 자격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았느냐에 따라 추납 기회가 갈린다는 점이다. 미혼 시절의 납부예외 기간은 첫 납부 이력이 없어도 추납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 없는 배우자로 지낸 적용제외 기간은 첫 보험료를 낸 이후의 기간만 추납할 수 있다. 보험료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채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았다면 나중에 형편이 나아져도 그 세월은 가입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적용제외자도 스스로 신청하면 ‘임의가입’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지역가입자에게 제공되는 보험료 지원도 받지 못한다. 가입 가능 여부를 알아보고 신청하는 일부터 보험료 부담까지 모두 개인의 몫이다. 앞으로 보험료를 내 가입 기간을 늘릴 수는 있어도 첫 납부 이전의 전업주부 기간을 추납해 부족한 기간을 채우는 방법은 쓸 수 없다.

국민연금 가입 대상에서 빠진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27~59세 적용제외자 385만 7798명 중 여성은 250만 2728명으로 64.9%를 차지했다. 추납으로 연금 수급 자격을 갖춘 사람도 여성이 다수였다. 지난해 추납을 통해 최소 가입 기간 10년을 채운 4만 6359명 중 여성은 3만 5575명(76.7%)이었고, 최근 5년간으로 넓혀도 17만 9415명 중 13만 3516명(74.4%)이 여성이었다. 추납이 여성에게 자신의 연금을 마련하는 통로가 되고 있지만 납부 이력이 없는 전업주부에게는 과거 전업주부로 지낸 기간을 추납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공단도 “불합리”…‘1가구 1연금’에서 ‘1인 1연금’으로국민연금공단도 제도의 불합리성을 인정했다. 공단은 “국민연금제도 도입 시 설계된 가구 중심의 가입구조로 인해 혼인 여부로 가입 자격을 결정하는 점과 이에 따른 추납제도도 다르게 적용하는 사실이 불합리한 면이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공단은 “모든 국민이 국민연금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당국과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허 의원은 “같은 무소득자인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연금 가입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전 국민 연금’이라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혼인에 따른 적용제외를 폐지하고 첫 납부 여부와 관계없이 추납과 보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부 중 한 사람의 연금에 기대는 ‘1가구 1연금’에서 각자 자신의 연금을 갖는 ‘1인 1연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취지다.

이현정 기자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