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옷 바꾼 ‘혁신형 제약기업’…“K-빅파마 육성 전초기지 돼야”
이병문 기자
수정 2026-10-13 14:01
입력 2026-10-13 14:01
업계 “R&D 성과·준법경영 종합 평가로 산업 육성 기능 강화해야”
‘개인 일탈’과 ‘조직적 위법’ 구분 필요…해외처럼 정교한 잣대 시급
제약바이오 업계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는 단연 ‘글로벌 빅파마로의 도약’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신약 개발, 기술 수출, 글로벌 임상 등에서 연이어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로 안착하려면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 역량을 뒷받침할 체계적인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보건복지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도입 14년 만에 전면 개편한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전환점이다. 복지부는 R&D 투자 유도를 강화하고, 신약 개발 중심의 생태계를 조성하며, 인증 심사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특히 평가 항목을 기존 25개에서 17개로 정비해 심사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R&D 투자 기준을 상향 조정해 가시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촉진하도록 했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춘 지원 체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준혁신형(도약형) 제약기업’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준혁신형, 혁신형 제약기업을 거쳐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하는 사다리형 육성 모델을 구축했다. 여기에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기업을 위한 ‘초혁신형 제약기업’ 도입 필요성까지 제기되면서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혁신 수준에 맞춰 정교하고 차별화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산업 육성’이라는 본래 취지에 더욱 부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업계에서는 불공정 행위에 따른 인증 결격 사유 기준을 현실에 맞게 더욱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번 개편으로 행정처분 시점이 아닌 ‘위반행위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5년 전 불공정 행위를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개선된 점은 진일보한 변화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기업 차원의 조직적·반복적 위법행위와 직원 개인의 일탈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잣대로 인증 취소나 탈락 처분을 내리는 구조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혁신 역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의 개별 사건으로 인해 수년, 수십 년간 쌓아온 R&D 노력과 신약 개발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은 제도 본연의 목적과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정책 목표와 ‘혁신기업 육성’이라는 산업 목표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리베이트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정지, 과징금, 형사처벌, 약가 인하 및 급여 정지·삭제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심사에서는 기업의 신약 개발 역량과 글로벌 성장 가능성을 정밀하게 평가하되, 준법경영 측면에서는 기업이 구축한 내부통제 시스템, 준법 감시 체계, 임직원 교육, 자체 조사 및 재발 방지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는 정교한 가점·평가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외 주요국의 제도 운용 방식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대만의 경우 2007년 제정된 ‘생기제약산업발전조례’를 통해 R&D 요건을 충족한 기업을 지정하여 법인세 감면과 세액공제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대만 제도의 핵심은 탈락 기준에 있다. 최근 3년 내 환경·노동·식품위생 등 관련 법령을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에 한해 인증 취소 및 혜택 환수를 진행함으로써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기업준법약정(CIA)’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법행위 발생 시 무조건적인 사업 자격 박탈보다는 준법책임자 지정, 내부통제, 독립적 검증 등 강화된 사후 관리 이행을 전제로 메디케어·메디케이드 등 연방 프로그램 참여 자격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단순 처벌을 넘어 기업 스스로 준법 체계를 고도화하도록 조율하는 실용적 접근법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는 결코 기업을 규제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칼날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혁신 스파크를 일으키고 글로벌 무대에서의 체급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 플랫폼이다.
14년 만의 이번 개편을 시작점으로 삼아,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의 고도화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강력한 별도 제재를 통해 불법행위를 엄단함과 동시에, 인증제도 내에서는 R&D 성과와 준법경영 역량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고도화된 체계를 완성할 때다. 혁신과 책임경영이 선순환하는 생태계가 구축될 때,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는 비로소 K-제약바이오가 글로벌 빅파마로 대약진하는 최고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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