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30대 후반부터 시작된다고? [사이언스 브런치]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10-13 17:30
입력 2026-10-13 17:30

폐경으로 인한 여성의 생리 지표
한번에 ‘뚝’ 꺾이는 절벽 같은 사건
10년 전 시작해 40~50대에 나타나



폐경은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 과정이 아니라 여성 온몸의 생리 지표가 한꺼번에 뚝 꺾이는 ‘절벽’ 같은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성호르몬 이상 신호는 폐경보다 약 10년 정도 앞서 시작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분자세포생물학 연구부, 면역학 및 재생 생물학 연구부, 카플란 메디컬 센터 산부인과, 클라릿 건강보험, 헬렌 슈나이더 여성 병원 공동 연구팀은 미국과 이스라엘 여성 약 100만 명의 임상검사 결과 3억 건 이상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10월 13일 자에 실렸다.


폐경은 여성 난소의 난포가 고갈되면서 월경이 영구적으로 끝나는 현상이다. 성호르몬 수용체는 뇌, 혈관, 뼈, 간 등 거의 모든 조직에 있어 폐경 영향은 생식 기능을 넘어선다. 그동안 폐경 연구는 미국의 ‘SWAN’ 같은 장기 추적 연구가 이끌어 왔다. 하지만 참가자 수와 검사 항목이 적었고 대규모 의료 데이터에는 마지막 월경 날짜가 거의 기록돼 있지 않아 정밀한 분석이 어려웠다.

과학자들이 폐경은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 과정이 아니라 한꺼번에 모든 생리 지표가 뚝 떨어지는 절벽 같은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성호르몬 이상 신호는 폐경보다 10년 정도 앞서 시작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픽사베이 제공




연구팀은 천문학에서 천체 사진을 선명하게 복원할 때 사용하는 ‘디컨볼루션’(역합성곱) 기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마다 폐경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별 평균 검사값에서 폐경 연령 분포의 영향을 수학적으로 걷어내 마지막 월경을 기준으로 한 시간표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1999~2022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 자료와 2004~2024년 이스라엘 인구 절반 정도가 가입한 건강보험기관 클라릿의 자료를 활용했다. 그 결과 미국 자료의 검사 항목 90개 중 52개에서 폐경 시점에 수치가 급변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에스트라디올, 난포자극호르몬(FSH) 같은 성호르몬은 물론 골밀도, 간 수치, 콜레스테롤 등 혈중 지질, 신장 기능, 혈액 삼투압까지 거의 모든 신체 시스템이 영향을 받았다. 이런 결과는 미국과 이스라엘 자료 모두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같은 방식으로 분석한 남성에게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변화 크기는 장기마다 에스트로겐에 얼마나 민감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뼈는 에스트로겐 영향에 특히 민감하고, 지질 대사 중심인 간이 그 뒤를 이었다. 혈액 삼투압은 에스트로겐이 민감도를 조절하는 항이뇨호르몬(바소프레신)의 지배를 받는다. 혈중 납 농도도 폐경과 함께 증가했는데 이는 뼈에 쌓여 있던 납이 빠져나온 탓으로 추정했다.

폐경으로 인한 변화는 대부분 질병 위험이 커지는 방향이었다. 대신 월경 출혈이 멈추면서 빈혈은 오히려 줄었다. 체내 철 저장량을 보여주는 페리틴 수치는 폐경 시점에 크게 상승했다. 폐경 뒤 골다공증 유병률은 같은 나이대 남성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랐고 심근경색과 뇌졸중도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우울과 수면 문제는 폐경 직후 일시적으로 높아졌다. 폐경 이듬해 중등도 이상 우울 비율은 19%로 이후 24년간의 11%보다 높았다.

성호르몬의 변화는 훨씬 일찍 시작됐다. 항뮐러관호르몬(AMH)은 마지막 월경 약 15년 전, FSH는 약 14년 전, 에스트라디올은 약 12년 전부터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에스트라디올과 FSH는 기존 연구에서 알려진 시점보다 7년가량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폐경 전 10년 동안 호르몬 수치의 개인 간 편차가 점점 커졌는데 이는 폐경 이행기 후반에 성호르몬이 크게 요동치고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현상과 들어맞는다.

폐경 호르몬 요법을 받는 여성에게서는 이 같은 급변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특히 뼈와 간, 신장 지표에서는 폐경 전 추세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유리 알론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교수는 “이번 연구로 변화를 감지하고 예방적 관리를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 폐경 10년 가까이 전으로 앞당겨졌다”며 “이번 분석법은 사춘기, 임신, 질병 발병처럼 시점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다른 생애 전환기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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