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찾는 미래의 가능성… 세상에게 건네는 복잡한 질문

오경진 기자
수정 2026-10-13 00:58
입력 2026-10-13 00:58
소설가 김연수 4년 만의 신작 ‘눈 내리는 삼일포’
‘눈 내리는 삼일포’ 그림책서 영감시선과 현상 본질 탐구하는 소설
과거·현재 자유롭게 오가는 작품
인간 궁극적 관심사 ‘미래’ 이야기
“살아 있는 한 나는 시간의 여행자”
과거에 골몰하는 인간에게 미래는 과연 열릴 것인가. 시대를 매혹하는 탁월한 이야기꾼 김연수(56)의 신작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문학동네)에 실린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인 미래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두드려도 미래는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빛을 발하며 인공마음 ‘바다’의 홀로그램을 침대 옆에 띄웠다. 바다는 언제나 선재가 가장 호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선재의 앨범에 저장되어 있던 연인의 사진을 분석해 재구성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과거의 얼굴이면서 미래의 얼굴이기도 했다.”(‘신의 마음 아래에서’ 중에서)
인공지능(AI)을 넘어 ‘인공마음’이 완성된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이야기. 단편 ‘신의 마음 아래에서’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성찰하는 작품이다. 기계는 언제나 과거의 정보만을 학습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분석해 미래의 가능성을 확률로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선재는 경찰이며, 그중에서도 인과수사과에서 일한다.
인과수사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의 범죄를 예측한 뒤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과거에 기반한 예측이 정말로 미래를 보증하는가. 우리의 세계가 고작 과거의 무수한 반복일 뿐인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에서 김연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독자에게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장차 제가 임금께 큰 사랑을 받게 될 테니 지금 그 전례를 적용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십년 뒤, 아니, 오 년 뒤면 분명 주상께서 그리하라 분부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제게 남은 지푸라기는 이것 하나뿐입니다.”(‘눈 내리는 삼일포’ 중에서)
궁궐을 지키는 어의(御醫) 앞에 한 여염의 병자가 찾아왔다. 자기 딸을 살려달라면서. 그러나 어의가 함부로 의술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드시 임금의 허락이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이 남자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하다. 머잖아 자신이 임금의 사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정말 미래를 본 것일까, 아니면 아픈 자식을 살리려는 아비의 허장성세일까.
“모든 것은 나로 인해 비롯되는 것이니 나를 거둬들이면 분별도 사라지며 일체의 것이 본래의 우주,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우주로 되돌아간다. 그게 살아가는 일의 본뜻이다. 나는 하늘의 눈이 되어 시작과 끝, 그리고 변곡점을 구분하는 내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부수기로 한다. 우주를 채색하는 조화옹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조화옹이다. 나는 이야기를 짓고 또 부수는 사람이다.”(‘눈 내리는 삼일포’ 중에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표제작 ‘눈 내리는 삼일포’는 그림을 소재로 시선(視線)과 현상(現象)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심오하고 철학적이지만, 작가 특유의 글재주가 이야기를 지루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김연수는 이 소설이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소설책을 감싸는 표지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1993년 ‘작가세계’에 시를,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연수는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한국문학의 대표적 중진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등으로 사랑받았다. 이 책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 이후 4년 만이다. ‘작가의 말’에 실린 한 문장이 퍽 인상적이다.
“살아 있는 한, 나는 시간의 여행자니까.”
오경진 기자
2026-10-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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