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못 막는 스토킹·가족살해

손지연 기자
수정 2026-10-13 00:55
입력 2026-10-12 22:20

스토킹보다 못한 가정폭력법

경찰, 장모 살인범 구속 영장 신청
제주선 40대女 스토킹 흉기 피살
피해자 보호 조치 실효성 도마에
가정폭력 자료사진. 서울신문 DB


서울 송파구에서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던 20대 남성이 장모를 살해한 데 이어 제주에서는 스토킹 피해로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4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 실패와 소재 파악 미비 등 경찰의 안이함에 더해, 피해자의 신고에 의존한 기존 보호조치가 잇따른 참극을 막지 못했다. 스마트워치도 범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고위험 가해자의 접근을 사전에 감시하고 격리하는 등 실질적인 보호 시스템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50대 장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20대 아내를 차량에 태워 강원도로 납치한 혐의로 지난 11일 긴급체포된 김모(2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2일 밝혔다. 김씨는 이날 경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김씨의 가정폭력 혐의를 수사하던 경기 수원권선경찰서는 지난 8월 법원에 주거지 퇴거와 아내 A씨에 대한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 1·2·3호를 신청했다.



다만 경찰은 피해자의 추가 신고가 없다는 이유로 유치장 유치 등 더 강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2개월 만에 끝나면서 경찰은 지난 6일에야 추가로 임시조치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날 뒤늦은 결정을 내렸다.



이혼·별거 등 이별 전후로 가정폭력이 크게 나타나는 양상을 고려하면 경찰이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해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폭력 피해자의 80.9%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없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1%에 그쳤다. 특히 이혼·별거 등 이별 전후 폭력 피해 경험률은 50%로,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위험이 집중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정폭력처벌법상 가해자의 접근을 감시할 수단도 스토킹처벌법보다 제한적이다. 스토킹은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지만 가정폭력 임시조치에는 해당 규정이 없다. 가정폭력 접근금지 임시조치도 기본 2개월, 최대 6개월로 스토킹 잠정조치(기본 3개월, 최대 9개월)보다 짧다.

별도의 피해자보호명령으로 최대 3년간 보호받을 수 있지만 법원의 보호명령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2026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전국 법원의 가정폭력 피해자보호명령 1심 처리 사건 1533건 중 보호명령 결정은 688건(44.9%)에 그쳤다. 보호명령 결정에는 대부분(98.7%) 접근금지가 포함됐다.

접근금지 명령과 스마트워치 모두 가해자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접근금지는 가해자의 자발적인 준수에 의존하고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경찰이 출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신고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해자를 선제적으로 통제할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고위험 가해자에 대해서는 유치·격리 등 실질적인 분리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도 피의자가 이를 지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법을 개정해 가정폭력 피의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워 접근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지연·이지 기자
2026-10-13 1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