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헛물켠 트럼프, ICC에 또 심술

임주형 기자
수정 2026-10-12 01:38
입력 2026-10-11 21:02
“나비 필라이, 아무도 모르는 인물
전쟁 8개 끝낸 내가 노벨상 받아야”
평화상 불발 직후 ICC 제재 발표
뉘른베르크 DPA 연합뉴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을 지낸 나비 필라이(85)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이 선정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폄하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공공연히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열린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노벨평화상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돌아갔다”며 필라이를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저격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끝냈다며 “이 가운데 하나만 해결했어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분쟁을 거론하며 “나는 한국과 북한, 일본과 북한, 중국과 대만 사이의 전쟁도 끊임없이 막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날 평화 증진과 국제법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필라이를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필라이는 아파르트헤이트(옛 남아공 백인 정권의 흑인 분리·차별 정책)에 맞섰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변호한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남아공 고등법원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판사이기도 했다. 르완다 집단학살 재판소를 이끌었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ICC 재판관 등을 역임했다.
위원회는 “법치는 평화를 보장하고 분쟁을 비폭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체제의 토대”라며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법 체제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시점과 맞물려 주목받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같은 날 영상 메시지로 미국 내 ICC 금융 자산 동결과 기관 전면 퇴출을 골자로 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새 제재안에 따라 미국 내 모든 기업과 개인, 금융기관은 180일의 유예기간 안에 ICC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독일 방문 중에 수상 소식을 접한 필라이는 이 같은 압박을 의식한 듯 동료들에게 “여러분이 박수를 더 치면 내가 이 상을 트럼프와 나눠야 할 수도 있다”는 ‘뼈 있는 농담’으로 감사를 전했다.
워싱턴 임주형 특파원
2026-10-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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