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훈맹정음 100년

박상숙 기자
박상숙 기자
수정 2026-10-08 01:01
입력 2026-10-08 00:24


1926년 11월 4일, 우리 문자의 역사에 두 가지 뜻깊은 일이 있었다. 조선어연구회가 첫 ‘가갸날’(한글날) 기념식을 열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이 세상에 나왔다. 6·10 만세운동과 민족의 울분을 담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으로도 기억되는 그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넓히려는 노력도 결실을 맺었다.

훈맹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은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부임하면서 시각장애인 교육에 뛰어들었다. 당시 학생들은 주로 일본어 점자로 공부했고, 미국인 선교사가 만든 ‘평양 점자’도 있었지만 한글의 초성과 종성을 구별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그는 1923년 제자 8명과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배우기 쉽고 점의 수가 적으며 서로 혼동되지 않는 점자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렸다. 각막염으로 실명할 뻔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렇게 여섯 개의 점을 조합한 훈맹정음이 완성됐다. 훈민정음의 ‘백성 민’(民)을 당시 시각장애인을 가리키던 ‘맹인 맹’(盲)으로 바꾼 이름에는 세종의 뜻을 잇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박두성은 이후 성경과 문학·역사책 등도 점자로 옮겼다. 손자 박현재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두툼한 점자책을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우편으로 부치곤 했다고 회고했다. 훈맹정음 탄생 100주년을 맞아 어제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는 그의 유산을 돌아보는 특별전 ‘점에서 세상으로’가 개막했다.

세종의 한글이 백성에게 읽고 쓸 길을 열었다면 박두성이 만든 점자는 그 길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열어 줬다. 점자가 일상 곳곳에 보급됐지만 시각장애인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는 여전히 적잖은 제약이 따른다. 누구나 글을 읽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탄생한 훈맹정음.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가치는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박상숙 논설위원
2026-10-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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