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충실하게… 낭만발레의 정수 보러 오세요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0-08 09:02
입력 2026-10-08 00:22

국립발레단 ‘지젤’ 13일부터 무대
새 얼굴 나대한·엄나윤 전막 데뷔

국립발레단 ‘지젤’ 전막 데뷔를 하는 엄나윤(왼쪽)·나대한(오른쪽)이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캐스팅표를 받아 들 때는 “이게 맞나? 설마”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실감이 나자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고, 서두른 몸은 탈이 났다. 한 번 넘어진 뒤에야 제 속도로 가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았다. 국립발레단 ‘지젤’로 처음 전막 무대에 서는 나대한(34)이 지나온 시간이다. 또래 파트너 엄나윤(33)과 함께 그 깨달음을 품고 천천히, 그러나 충실하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만난 엄나윤과 나대한은 “오랫동안 코르 드 발레(군무)만 해 와서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지난해 같은 무대에서 각각 두 윌리(처녀 귀신)와 마을 남자 군무를 맡은 둘은 이제는 지젤과 알브레히트를 연기한다.


오는 13~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지젤’은 현역 시절 지젤로 이름을 날린 김주원 단장 겸 예술감독이 취임 후 올리는 첫 서울 전막 공연이다. 순진한 시골 여인 지젤과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의 사랑과 용서를 그린 이야기로, 낭만발레의 정수로 꼽힌다.

이번 공연은 일곱 번의 무대를 저마다 다른 짝에게 맡겨 선택의 폭도 넓혔다. 수석무용수 박슬기·박종석이 막을 열고, 이하연·김기완, 이은서·이재우, 안수연·허서명, 박슬기·김윤이 무대에 오른다. 여정의 마지막은 엄나윤과 나대한이 장식한다. 김 단장은 “충분히 준비한 무용수에게 자신을 보여줄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도 예술감독의 중요한 역할”이라면서 “새 얼굴들의 가능성도 발견해 주셨으면 한다”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나대한 무용 출발점 ‘알브레히트’
꿈의 배역 위해 근지구력 향상 노력
1막과 2막 확실한 대비 보여줄 것
국립발레단 대표 레퍼토리 국립발레단 제공




엄나윤의 지젤은 ‘갑자기’ 시작됐다. 2018년 입단한 그는 애초 지젤 후보가 아니었지만 지난 9월 평택 공연 리허설 중 1막 솔로를 춰 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지젤처럼 보이려면 무조건 순수하고 천진난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진짜 열여섯 살이라고 생각하며 춤췄다”고 떠올렸다. 8월 말 카자흐스탄 공연에서 ‘해적’ 주역으로 급히 투입돼 무대를 해내며 신뢰를 쌓아 둔 터였다.

2막의 윌리 지젤은 유령처럼 떠다니는 움직임이 핵심이다. 엄나윤은 “팔다리가 긴 체형이 아니어서 나만의 장점을 공기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설정했다”면서 “코어(몸의 중심)의 힘을 키우고 ‘난 공기야’라고 생각하니 몸으로 드러나더라”고 말했다. 박슬기 수석의 영상을 돌려 보며 몸에서 우러나는 감정도 공부했다.

날카롭게 지적하기로 소문난 김 단장의 주문은 뜻밖에도 “흐트러져라”였다. 그는 “몸이 잘 잡혀 있으니 그걸 믿고 (움직임을)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하셔서 자유롭게 시도해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나대한에게 알브레히트는 무용의 출발점이었다. 고교 2학년 때 누나의 권유로 늦게 발레를 시작한 그가 처음 배운 작품이 ‘지젤’ 2막 알브레히트 솔로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진학한 뒤에 당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김주원·김현웅(현 한예종 교수)의 ‘지젤’을 보고 알브레히트를 꿈꿨다.

갑작스레 맡게 된 엄나윤의 ‘지젤’
공기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며 춤춰
여운 오래 남는 무용수로 기억되길
꿈의 배역에 걸맞은 무용수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에 연습을 하다 평택 공연을 앞두고 아킬레스건에 탈이 났다. “주역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춰야 하는’ 2막 장면을 위해 근지구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1막의 알브레히트는 철없지만 솔직한 남자다. 어쩌면 예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을 저지르고 후회한 적이 있고, 그런 일을 겪으면서 많이 배웠다”는 그는 “철없는 1막과 처절하게 후회하는 2막이 확실하게 대비되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하체와 폴드브라(팔 움직임) 등을 귀족 청년답게 정돈하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걷는 속도와 다가가는 템포에 감정을 녹이려 한다”고 부연했다.

무대를 앞둔 두 사람의 바람은 선명하다. 나대한은 “비겁하든 불쌍하든 좋든 싫든, 관객이 알브레히트를 향한 감정을 확실히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엄나윤은 “‘그 무용수의 분위기가 좋았다’고 기억되는, 여운이 오래 남는 무용수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립발레단 ‘지젤’ 포스터. 국립발레단 제공


최여경 선임기자
2026-10-0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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