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쥐어짜는 통증인 줄 알았는데”…심근경색 아닌 ‘대동맥박리’
이병문 기자
수정 2026-10-07 16:22
입력 2026-10-07 16:22
통증 양상 비슷, 원인·치료법은 달라…대동맥 CT로 신속 감별해야
고혈압·고령이 주요 위험요인…흉통이 등·복부로 퍼지면 즉시 119
67세 김진섭 씨(가명)는 평소 고혈압 약을 복용하면서 규칙적으로 운동해 건강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업무 도중 갑자기 가슴을 강하게 조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났다. 통증은 등 쪽으로 이어졌고 식은땀과 호흡곤란까지 동반됐다. 결국 쓰러진 김 씨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이송됐다.
의료진은 급성심근경색을 의심해 검사에 나섰지만, 대동맥 CT에서 확인된 원인은 달랐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폐색이 아니라 대동맥 혈관벽이 찢어진 ‘대동맥박리’였다.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전신으로 전달하는 가장 큰 혈관이다. 혈관 안쪽 벽에 손상이 생기면 혈액이 혈관벽 내부로 유입되면서 벽이 여러 층으로 분리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혈관이 파열되거나 뇌와 신장 등 주요 장기로 향하는 혈류가 차단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주요 위험요인으로는 고혈압과 고령이 꼽힌다. 마르판증후군 등 유전성 결합조직질환이나 이엽성 대동맥판막 같은 선천적 요인도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평소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이라면 혈압 관리와 정기적인 진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동맥박리는 병변의 위치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상행대동맥까지 박리가 진행된 Stanford A형은 심장 주변 출혈과 대동맥 파열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일반적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하다. 반면 상행대동맥을 침범하지 않는 B형은 합병증이 없는 경우 혈압과 심박수를 조절하면서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장기 혈류 장애나 파열 위험, 지속적인 통증, 빠른 대동맥 확장 등이 나타나면 시술이나 수술을 검토한다.
치료에는 손상된 혈관을 인조혈관으로 교체하는 수술과 혈관 내부에 스텐트그라프트를 삽입하는 혈관 내 치료가 활용된다. 스텐트그라프트는 혈관 안에서 손상 부위를 덮어 혈액이 찢어진 혈관벽 사이로 유입되는 것을 줄이는 방식이다. 병변의 위치와 범위, 혈관 구조, 환자의 전신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한다.
인천세종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전창석 과장은 “수술은 문제가 생긴 혈관을 직접 교체하는 치료이고, 스텐트그라프트는 찢어진 입구를 막아 혈류가 원래 혈관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치료”라며 “실제 치료 방법은 대동맥의 병변 위치와 박리 범위, 혈관 형태, 환자의 전신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대동맥박리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급성심근경색과 증상이 유사해 초기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심근경색은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지는 질환인 반면, 대동맥박리는 혈관벽 자체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두 질환을 혼동하면 치료가 늦어질 뿐 아니라 부적절한 약물 투여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대동맥박리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혈전용해제 등을 투여하면 심각한 출혈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통증의 양상은 진단에 참고가 된다. 대동맥박리는 갑작스럽고 극심한 통증이 가슴에서 등이나 복부로 퍼지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양팔의 혈압이나 맥박이 다르거나 실신, 호흡곤란, 복통, 팔다리의 감각 및 운동 이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러나 증상만으로 두 질환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는 없으며, 필요한 경우 대동맥 CT 등 영상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전창석 과장은 “모든 대동맥박리를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갑자기 시작됐거나 가슴에서 등·복부로 통증이 퍼지고 실신, 호흡곤란, 팔다리 이상 증상이 동반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119에 연락하거나 응급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동맥박리는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수록 치명적인 합병증의 위험이 커지는 응급질환이다. 갑작스러운 흉통을 단순한 근육통이나 소화기 증상으로 넘기지 말고, 평소와 다른 통증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