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계단을 두되, 문턱을 낮게

수정 2026-10-07 00:18
입력 2026-10-07 00:18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상설전시 입장 유료화가 검토 대상에 올랐다. 관람객이 밀려들며 혼잡과 관리 부담 문제가 함께 커진 것이 배경이다. 논의는 ‘얼마를 받을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위해 받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박물관 문턱의 값을 매기는 순간 사회가 문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 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물가가 비싼 런던을 여행할 때 그나마 반가운 사실은 영국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미술관 등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라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무료였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영국 문화부 후원을 받는 관할 미술관들이 무료입장 체제로 전환했다. 이때 제국전쟁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 등이 무료입장 정책에 동참했다. 2026년 12월 무료입장 정책 25주년을 앞두고 이의 효과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예산 삭감안에 대한 방안으로 박물관 입장료 징수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고심 끝에 잉글랜드에서는 자국민은 무료로 하고 해외 방문객에게만 요금을 물리는 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난 9월 28일 영국 정부는 국립박물관 15곳의 무료 입장을 유지하고 해외 방문객 유료화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국인·외국인 신분 확인에 따른 비용 발생과 관광 산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다만 무료 원칙은 지켰으나 재원 마련은 여전히 숙제다.


물론 요금을 올린 곳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올해 1월부터 유럽 밖 방문객의 입장료를 대폭 올렸다. 18세 미만은 무료고 유럽 거주자 요금은 그대로다. 인상된 입장 수입은 새 입구와 모나리자 전용 공간 조성에 쓰겠다는 구상이었다. 입장료를 받는 순간, 그 쓰임새를 시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무료라는 원칙과 재정 마련 사이에서 각국의 미술관들은 저마다 답을 찾는 중이다.

우리도 입장료 유료화 논의는 필요하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람 환경에는 재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과 노약자, 장애인, 저소득층의 무료 및 감면과 무료 개방일, 그리고 입장 수입이 박물관과 지역 문화 기반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먼저 약속되어야 한다. 요금이 재원 마련 수단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함께 지키는 약속이 될 때, 유료화는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문턱을 낮춘 사례로 피렌체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서관을 설계한 미켈란젤로는 어둡고 긴 복도를 밝은 열람실로 나아가기 위한 어두운 서막으로 의도했다. 방문객은 계단을 올라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 빛이 가득한 열람실에 닿는다. 지식이 어둠을 밝히듯,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지식의 길이다. 메디치 가문은 권력가의 장서를 개인 서고에 가두지 않고 공개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아무에게나 공개했다는 뜻이 아니라 학식 있는 열람자에게 열렸다는 뜻에 가깝다. 그 계단의 높이를 두더라도, 오르려는 누구도 문턱에서 돌아서지 않게 해야 한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이미경 미술사학자
2026-10-07 26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