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노벨물리학상] 34년 만의 ‘나 홀로 수상’… 남극 얼음에 인생 건 82세 물리학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10-06 20:25
입력 2026-10-06 20:25
1992년 이후 첫 ‘물리학상 단독 수상’
“남극 빙하로 ‘유령입자’ 잡아볼까”
파격적 아이디어로 노벨물리학상까지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제공
2026년 노벨 물리학상은 남극의 거대한 빙하를 이용해 ‘유령입자’ 중성미자(뉴트리노)를 검출함으로써 우주의 기원을 찾아낸 벨기에 출신 미국 연구자가 단독 수상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 시간)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프란시스 할젠(82)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교수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남극 중성미자 검출기 ‘아이스큐브’에 대한 결정적 기여를 하고 이를 통해 천체물리학적 기원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발견을 이끌어 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할젠 교수의 연구 분야는 전통적인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 융합된 ‘입자 천체물리학’이자 신흥 연구 분야인 ‘다중신호 천문학’에 속한다. 이렇게 새로운 융합 연구 분야는 집단 연구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할젠 교수의 단독 수상은 이례적이다. 실제로 물리학상 단독 수상은 34년 만이다. 가장 최근 물리학상 단독 수상자는 아원자 입자 추적 검출기를 고안해 입자물리학 분야에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아 199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조르주 샤르파크이다. 샤르파크는 입자 검출기를 만들어 상을 받았고 할젠은 남극 얼음을 거대한 중성미자 검출기로 활용한 공로로 수상하면서 34년을 사이에 둔 두 단독 수상이 모두 검출기 혁신에 돌아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하도 질량도 없는 중성미자
우주 비밀 알려주는 ‘전령사’
남극 유령입자 사냥꾼된 이론가중성미자(뉴트리노)는 전기적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이른바 ‘유령 입자’다. 실제로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 650억 개가 매초 우리 새끼손톱을 지나가지만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
노벨재단 제공
우주 공간에는 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은 활동 은하핵이나 초신성 폭발 등 지구에 있는 입자가속기보다 수백만 배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천연 입자가속기들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양성자 같은 우주선이나 감마선은 지구로 날아오는 동안 우주 자기장에 의해 궤적이 휘거나 성간 물질과 상호작용해 에너지를 잃고 막혀 버린다.
그런데 극한의 에너지 환경에서 함께 생성되는 중성미자는 우주 자기장이나 성간 물질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처음 발생한 곳으로부터 지구까지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그래서 중성미자를 검출해 궤적을 역추적하면 우주망원경 등 빛을 이용해 볼 수 없는 우주의 심연까지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중성미자를 완벽한 우주의 전령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유령 입자를 어떻게 포착하느냐였다. 1987년 가을 한 강연장에서 소련 과학자들이 남극 얼음에 전파 안테나를 묻어 중성미자를 잡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젠 교수는 1988년 유령 입자 포착을 위해 바다와 달리 빛을 내는 생물도, 방해 전파와 지진도 없고 방사성 물질도 적은 거대한 천연 얼음 덩어리인 남극 빙하에 빛 센서를 넣어 검출기로 활용하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중성미자가 물이나 얼음 속 원자핵과 충돌하면 전기를 띤 입자가 튀어나와 옅은 푸른 빛을 내는 ‘체렌코프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빛을 포착하자는 것이다. 할젠 교수는 훗날 “당시 자연 얼음의 광학적 성질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기포 때문에 실패한 남극 검출기
“얼음 성질 전혀 몰라 포기 않고 도전”
포기 않고 도전했더니 노벨상할젠 교수의 주도로 남극점 지하에 건설된 아이스큐브 관측소는 뜨거운 물로 얼음에 구멍을 뚫고 1450~2450m 깊이의 얼음 속에 총 86개 케이블을 내리고 5160개 광학 모듈을 심어 1㎦의 세계 최대 중성미자 검출기다. 프로젝트 초기인 1993년 깊이 800~1000m에 설치한 센서들은 얼음 상층부에 갇힌 지름 50㎛(마이크로미터)의 공기 방울 때문에 빛이 산란되는 문제가 발생해 제 역할을 못했다. 그렇지만 1400m 이하 심부 빙하는 압력에 의해 공기 방울이 없는 극도로 투명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시험 장치 ‘아만다’의 성공을 발판으로 2004년 아이스큐브 건설이 시작됐다.
2011년 완공된 아이스큐브는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거쳐 2013년 지구 대기권이 아닌 먼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첫 증거인 1페타전자볼트(PeV)가 넘는 중성미자 2개를 찾아냈다. 아이스큐브에는 매년 지구 대기에서 생긴 중성미자 약 10만 개를 포착하지만 우주에서 온 것은 100개 안팎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건초더미 속 바늘’을 골라내 2017년 블레이자(중심 블랙홀이 뿜는 빛줄기(제트)가 지구를 정면으로 향한 은하) ‘TXS 0506+056’, 2022년 지구에서 4600만 광년이나 떨어진 고밀도의 가스와 먼지로 뒤덮인 활동은하핵 ‘NGC 1068’ 등 우주 심연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들을 잇따라 포착했다. 올해는 우리은하에서 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도 확인했다.
남극 유령입자 사냥꾼된 이론물리학자
노벨재단 제공
지난 3월에는 2019년 포착된 11.4PeV짜리 중성미자가 아이스큐브 관측 사상 최고 에너지 기록으로 보고됐다. 이는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대형강입자충돌기(LHC)의 양성자 빔 에너지(7TeV)보다 약 1600배 높은 수준이다. 남극점에서는 관측 부피를 8배로 키운 ‘아이스큐브-Gen2’가 계획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할젠 교수의 끈질긴 집념과 리더십은 인류에게 환상적인 장비를 안겨줬으며 빛이나 전파 같은 전자기파 관측에만 의존하던 기존 천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성미자 천문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우주 기원의 거대한 비밀을 다중신호로 탐구하는 우주 개척 시대가 할젠 교수의 얼음 검출기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할젠 교수는 1200만 스웨덴크로나(16억 128만 원)를 받는다. 노벨재단은 7일 오후 6시 45분(한국 시간)에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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