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전 이집트 왕릉의 비밀…‘순장’은 잔혹한 현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용하 기자
수정 2026-10-06 17:30
입력 2026-10-06 17:30
이집트 아비도스의 장례 복합 단지는 기원전 3000년경 통일 이집트 초대 왕들이 건설했다. 왕릉 자체뿐만 아니라 장례 의식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 형태의 무덤, 내원, 무덤과 내원을 둘러싸고 있는 부속 매장지로 구성돼 있다. 이 무덤들은 1920년대 영국의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에 의해 발굴됐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자연사할 수 없다고 의심했지만 치명상을 입증할 만한 확증은 찾지 못했다. 그런데 현대 법의학 기법을 통해 해당 유적지 두개골 표본을 재분석한 결과 이 중 최소 39%가 머리에 가해진 타격에 의해 고의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퍼듀대 연구팀은 아비도스의 제1왕조 무덤 주변에 군집한 수많은 매장지가 왕의 사후에 왕실 가솔들에 의해 희생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고고학 분야 국제 학술지 ‘최신 환경 고고학’ 10월 5일 자에 실렸다.
위키피디아 제공
페트리는 발굴 당시 어떤 무덤은 수백 기로 둘러싸여 있을 만큼 압도적인 숫자의 부속 매장지를 보고 ‘순장’을 의심했지만 치명적 외상의 증거를 찾지 못해 가설로만 남게 됐다. 순장은 지배자가 사망할 때 그 측근들을 살해해 함께 묻는 인신공양의 한 형태다. 많은 문화권에서 순장은 희생된 이들이 일종의 사후 세계에서도 지배자를 계속 섬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행해지지만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어떤 순장자들은 영원한 생명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강요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연구팀은 페트리의 발굴에서 남은 증거를 찾아내 현대 법의학 지식을 활용해 이를 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팀은 케임브리지대 더크워스 컬렉션에서 발굴된 머리뼈 46개를 재분석해 폭력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다. 46개의 두개골 중 18개에서 유의미한 두개골 외상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과거 페트리가 자연 발생적 손상으로 착각했던 선상 골절이었다. 선상 골절은 뼈가 조각나거나 함몰되지 않고 일직선이나 굽은 선 형태로 갈라진 골절이다. 법의학적으로 이는 죽음에 임박해 발생한 사망 무렵 손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18개의 두개골 중 일부에서 눈 부위에 가해진 찍힘 손상을 포함해 날카로운 물체에 의한 외상 증거가 확인됐으며 이 때문에 급격한 의식 상실, 내출혈 및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이집트에서는 철퇴를 이용해 적을 공격하곤 했지만 순장된 이들은 적이 아니었으며 철퇴를 사용했다면 함몰 골절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두개골에서는 선상 골절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넓고 평평한 무기나 추락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나 두개골 골절을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떨어졌다면 다른 뼈들도 부러졌을 것이기 때문에 추락사도 아니라, 질식이나 골격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를 이끈 로즐린 캠벨 박사는 “이번 연구는 불완전하고 결함 있는 데이터 세트라고 하더라도 최신 방법론과 지식으로 무장해 기존 데이터를 재검토할 때 과거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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