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17세기 세계정세와 나선정벌

수정 2026-10-06 01:26
입력 2026-10-05 20:56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신항로 개척 이후 17세기에 각 지역 간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져 갔다. 오스만, 사파비, 무굴, 청과 같은 전통적인 제국들은 많은 인구와 풍성한 물자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누리고 있었으며 릴레이식 교역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서유럽 각국은 계속되는 갈등과 전쟁을 겪으며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형성해 나갔다.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두 국가를 꼽으라면 정치적으로는 프랑스를, 경제적으로는 네덜란드를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추상적 법인인 국가와 구체적인 개인인 국왕을 동일시하는 절대왕정이 들어섰고, 네덜란드에서는 자본의 법인화인 주식회사가 등장했다. 프랑스가 강력한 상비군으로 서유럽 패권을 장악하는 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향신료 교역의 전 과정을 장악했다. 프랑스에서는 끝없는 전쟁 준비로 국가 재정이 점차 자본주의화되어 갔고 네덜란드의 자본주의는 교역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폭력을 내재화했다. 그 결과 두 국가는 당대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17세기 서유럽에서는 전쟁국가와 자본주의가 결합했고, 이 체제는 곧 유럽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아메리카에서는 유럽과 동일한 체제가 구축되면서 노예와 원주민이 이 체제가 부과하는 일방적 폭력에 헐벗은 채 노출되어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과거 몽골의 지배를 받던 남과 북 두 지역에 거대 세력이 들어섰다. 남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이미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북쪽에서는 이제 막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넘어 동북아로 팽창해 나가고 있었다. 이때 러시아는 여전히 몽골식 체제와 습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유럽과의 모피 교역이 확대되면서 서유럽식의 체제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1682년 차르로 즉위한 표트르 1세 치세에 러시아는 본격적인 서유럽식 개혁을 강행해 나간다.

17세기 조선도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1627년에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박연)가, 1653년에는 하멜이 조선에 표착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동남아시아를 넘어 일본까지 교역로를 확보한 결과였다. 물론 효종 치세였던 이때 조선의 가장 큰 사건은 나선정벌(1652~58)이었다. 청의 파병 요청으로 조선의 화승총 부대가 러시아군과 맞붙은 사건이었다. 문제는 적군이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파병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실익도 없이 군사들의 희생만 치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러시아라는 두 나라와의 조우를 이해할 만한 정세 파악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큰 이슈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달리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이고 세계정세에도 민감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파병에 대한 논의는 복잡한 세계정세에 대한 주도면밀한 파악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2026-10-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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