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도 불만, 한국은 무시…北 왜 이러나? 고립 자처한 아시안게임 [나고야 야호]

류재민 기자
수정 2026-10-04 00:56
입력 2026-10-03 20:11
북한 방철미 복싱 여자 54㎏급 준우승
경기 후 노골적인 항의에 매너도 무시
장동환·김민성 경기 때는 밖에서 배회
자본주의 경험…가스라이팅 약해질 듯
“방철미! 힘내라!”
지난 2일 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복싱 여자 54㎏급 결승 경기가 열린 일본 아이치현 니시오 체육관에 힘찬 응원 구호가 들렸다. 방철미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24 파리올림픽 동메달을 딴 북한 전설의 복서다. 경기장을 찾은 북한 선수들은 목이 터져라 방철미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선수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방철미는 태국의 낫니차 총프롱클랑에게 패했다. 심판진 5명 가운데 4명이 태국 선수의 손을 들었고 1명만 방철미가 우세했다고 판정했다.
동료 선수들과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회원들의 응원에 보답하지 못한 방철미는 판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상대 선수가 심판 및 북한 코치진에게 인사를 건넬 때도 방철미는 링 위에서 씩씩거리며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감독과 코치가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방철미는 뒤늦게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은메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북한의 반발은 계속됐다. 북측 관계자는 아시아복싱(AB) 관계자를 붙들고 유창한 영어로 항의를 10분 넘게 이어갔다. 판정에 대한 불만과 함께 방철미가 이제 32살이라고 하소연하는 소리도 들렸다. 나이를 고려해 메달을 달라고 우기는 것일까.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을 지나친 방철미는 대회 관계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음에도 거절했다. 통역이 없던 터라 해당 관계자가 “내가 못 알아들어도 한국어로도 괜찮다”고 간곡하게 설득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선수와 대화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방철미의 경기에 이어 여자 65㎏급 결승이 대만과 인도 선수의 경기로 열렸다. 방철미의 경기 때 힘차게 응원하던 선수들은 가만히 앉아 침묵을 지켰다. 옆에서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지만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지령이라도 받은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어 한국의 경기가 열리자 북한 선수들이 모두 자리를 떴다. 60㎏급에 출전한 장동환, 80㎏급에 출전한 김민성의 경기가 연달아 열렸는데 북한 선수들은 사라졌다. 대신 이들은 밖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모여 있었다.
북한 관계자들은 기자가 접근해도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중국이나 태국, 일본 등 이날 결승전 경기를 취재하러 온 다른 나라 취재진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경기에서 한국 취재진과 담을 쌓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게다가 조총련계 재일 교포들과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교포들이 “선수들한테 진심으로 응원했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하자 지도자로 보이는 관계자가 환한 미소와 함께 거듭 인사했다. 다른 교포는 선수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옷을 준비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 선수들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온 것은 한국 선수들의 경기가 끝난 직후다. 지령에 따르는 움직임이 일사분란했다. 경기장에 들어갈 때가 되자 선수들은 자신들을 응원해준 교포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한국 취재진에게는 어지간하면 보여주지 않는 다정한 모습이다.
함께 지령을 받고 움직인 이들은 자리를 바꿔 경기장 구석에서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방철미의 시상식을 보기 위해서다. 반대편에서는 시상식을 위해 일본 경찰들이 북한 국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북한 국기가 신기한 듯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방철미는 시상식에서 다른 선수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을 때 홀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번 대회 북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나마 이들이 소통하는 대상은 조총련계 재일교포들뿐이다.
왕따를 자처했지만 북한의 젊은 선수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김정은 치하를 벗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유분방함을 목격하고 환경이 월등하게 좋은 일본에서 생활을 경험하고 돌아간다. 이미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을 본 청년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 국제대회 출전 등을 발판 삼아 정상국가화를 꿈꿀수록 북한 지도부의 가스라이팅도 점점 약해질 게 뻔하다.
글·사진 니시오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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