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팬티만 입고 가슴 노출도 마음껏” 伊여성들 사랑받는 ‘남녀 분리 해변’ 왜? [월드픽]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수정 2026-10-03 00:17
입력 2026-10-03 00:02
유럽 마지막 伊트리에스테 ‘라 란테르나’
100년 넘는 역사…남녀 분리 전통 지속
최근 분리벽 넘은 여성 관광객 소동 화제
“성차별 아닌 자유…남자들 눈치 안 봐”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남녀 분리 해변’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라 란테르나’의 남성 전용 구역에서 남성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Stefano Miceli’ 캡처


“남자들이 볼 리 없으니 끈팬티(thong)를 입거나 가슴을 드러내도 괜찮잖아요. 이런 특별한 분위기가 좋아요.”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남녀 분리 해변’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라 란테르나’(La Lanterna)에 대한 책을 3권이나 썼다는 미콜 브루사페로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복장에도 완전한 자유가 있다”며 이 해변만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최근 한 여성 관광객이 남자친구와 함께 있겠다며 ‘남성 전용 구역’에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피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이 해변이 100년 넘게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랑받아 온 이유를 미국 CNN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완전한 자유: 이탈리아 여성들이 남녀 분리 해변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했다.

라 란테르나는 트리에스테 중심가에 위치한 유일한 해변이다. 접근성이 좋아 과거부터 많은 주민들, 특히 여성들로부터 사랑받았다. 방문객들은 이곳의 자갈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물놀이를 하며 여유를 즐긴다.

해변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먼저 창구에 줄을 서서 1.2유로(약 18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 다음 두 개의 문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되는데 왼쪽은 여성용 탈의실, 오른쪽은 남성용 탈의실로 이어지는 문이다. 특이한 점은 탈의실을 지나서 해변으로 나가도 남녀 구역을 분리하는 약 3m 높이의 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남녀 분리 해변 ‘라 란테르나’의 여성 전용 구역에서 여성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남성 전용 구역과 분리하는 약 3m 높이의 벽이 보인다. 유튜브 채널 ‘Stefano Miceli’ 캡처


바닷물에 들어가면 벽이 사라지면서 다시 다른 성별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벽이 끝난 지점부터 해수면 위로 분리하는 선이 이어지면서 남녀가 섞일 수 없는 상태는 유지된다.

앞서 지난 6월 밀라노에서 이 해변에 온 여성 관광객이 남자친구와 함께 있겠다며 분리벽을 넘어 남성 전용 구역으로 넘어가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서 이를 본 한 50대 여성이 문제의 여성에게 해변 규정을 준수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으나, 해당 여성은 오히려 삿대질을 하고 “성차별주의자이자 낙후된 사고를 가진 집단”이라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육탄전 직전까지 치달았고, 이를 말리던 해변 여성 직원이 밀쳐지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소란을 피운 커플은 해변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의 입장료 2.40유로를 전액 환불해 달라며 끝까지 소동을 이어갔다.

세계적으로 이목을 모은 이 소동은 이 해변과 깊은 유대감을 지닌 주민들에게도 관심을 끌었다.

현지인들은 이 해변을 ‘벼룩’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엘 페도친’(El Pedocin)으로 부르곤 한다. 트리에스테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아래서 번성하던 시기에 군인들이 해변에서 말의 털을 손질하고 벼룩을 제거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해변 ‘라 란테르나’ 내 남녀 분리벽 너머 여성 전용 구역에서 여성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Stefano Miceli’ 캡처


엘 페도친은 1903년 개장할 때부터 남녀 분리 해변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런 해변이 그리 특별할 것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녀 분리 해변은 점차 줄어들었고 지금은 이곳만이 유럽에서 유일한 곳으로 남았다.

런던대 이탈리아학 선임 강사인 카티아 피치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여성 교육이 일반적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1918년 트리에스테가 이탈리아 영토가 됐을 때 이곳 여성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들은 이 해변에서 방해받거나 시달리거나 잔소리를 들을 필요 없었다. 남성의 간섭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4년 동안 해변구조대원으로 일했다는 사뮤엘레 미첼리는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고요함”이라며 “여성 전용 구역에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했다.

브루사페로는 최근의 소동에 대해 “그 관광객은 트리에스테 사람들에게 이 벽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 같다”며 “성차별적인 게 아니라 자유의 상징인 거다. 벽 양쪽에서 남녀 모두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전통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에 아무도 벽을 허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