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 침공과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쿠바 봉쇄 및 가자 평화협정을 국제 평화에 대한 기여로 정당화했다. 인공지능(AI) 규제 요구는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사기’로 일축했고, 유엔 예산 삭감을 개혁으로 내세우며 국제형사재판소 등은 주권을 침해하는 ‘불량’ 국제기구로 맹비난했다.
트럼프의 미국이 유엔의 국제적 리더십을 폐기하는 미 우선주의를 시행하고 있다면 러시아와 영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축으로 진영 대결을 시도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의 행보 및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서구 소수’ 제국주의 지배의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며 비판했다. 또 글로벌 사우스와 이스트의 부상과 연대에 따른 다극화 국제질서의 도래를 주장하며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유럽 안보 질서 파괴와 우크라이나 ‘나치 정권’의 친러시아 지역 인권 탄압에 대한 대응으로 정당화했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 독일과 일본이 군비 증강에 나선 점을 비판하면서 이들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에 반대하고 중국의 AI 관련 국제기구 창설 제안을 지지했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와 국제법,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특히 정보(인지)전과 사이버 공격 등으로 영국 선거에 개입하는 위협 세력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강력한 반러시아 기조는 국내적으로 정보전 대응 강화, 국제적으로 러시아에 침공 비용을 강제하자는 호소 및 그 주도적 역할에 대한 천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와 중국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지구적 문제에 대한 다자주의적 해법을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문명과 야만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하며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반에서 힘이 정의가 되는 ‘숙명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전쟁과 주권 등에 대한 서구의 ‘이중 기준’을 비판하는 동시에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글로벌 노스·사우스의 분열된 국제사회관 역시 거부했다.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 역시 2차대전 이후 유엔과 국제법 중심의 전후 질서를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와 이란, 가자, 쿠바 문제 등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냉전적 인식과 진영 대결을 거부하고 문명 간 대화 및 다자주의를 국제질서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양국 간 차이도 존재한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중심의 규칙 기반 무역 질서를 강조하고, 프랑스는 미중이 AI 관련 기술과 규범을 독점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이 국제질서 파괴의 주범으로 영국과 프랑스와 불화하고, 중국은 러시아의 반서구 진영 건설을 거부하고 다자주의와 경제적 세계화를 주창하며 AI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세상인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대외정책 전반의 최우선 기조로, 그리고 ‘서구’를 발전 모델이자 규범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중국은 부차적인 전략적 고려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외교로 과연 한국의 생존과 발전, 규범적 위상을 담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