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으로 풀어낸 ‘삶의 접경’… 우리의 삶은 과연 무슨 색일까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0-02 00:07
입력 2026-10-02 00:07

접경지대/제럴드 머네인 지음/강아름 옮김/문학동네/148쪽/1만 3000원

호주 작가 제럴드 머네인.
©Timothy Hillier


“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 직후 나는 셸리의 어떤 시에 나오는 특정한 두 구절을 여기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리란 걸 예감했다.”(129쪽)

호주 작가 제럴드 머네인(87)의 ‘접경지대’ 속 ‘나’는 자신의 글을 ‘보고서’라고 불렀다. 그 보고서는 퍼시 비시 셸리의 시구에 닿으며 끝난다. “삶은, 여러 색 유리 돔처럼,/ 영원의 백색 광휘를 물들인다.” 요절한 존 키츠를 기린 ‘아도니스’의 한 대목이다.


셸리에게 색유리 돔은 영원의 흰빛을 가리는 막이자 죽음이 짓밟아 부술 대상이었다. ‘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생애를 빛으로 물든 고유한 무늬로서 삶을 반추한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내면에 빛나는 본질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그런 유리 같은 존재 하나하나를 광원에 차례로 갖다 댔을 때 어떤 색을 띨지 종종 사색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75쪽)



●평생 호주를 떠난 적 없는 노작가



머네인은 평생 호주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한 적이 없다. 1939년 멜버른에서 태어나 교사와 문예창작 강사로 일하며 1974년 장편소설 ‘태머리스크 로’로 데뷔했고, 1982년 ‘평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7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접경지대’는 이듬해 호주 총리문학상을 받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르는 그는 2021년 작가로서 은퇴를 선언한 후에 꾸준히 열 손가락 안에 들고 있다.

‘접경지대’ 속 ‘나’는 국경 언저리 소읍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하고 조그마한 집으로 옮겼다. “독자로서의 경험 가운데 내가 망각한 것이 있다면 그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책에서 “필요로 했던 건 모두 얻었노라 선언”하듯 책 대부분을 처분하고 낡은 라디오 하나만 들고 떠났다. 그리고 마음에 가라앉은 이미지들의 내력, ‘이미지 역사’를 기록해 나갔다. 그 기록의 중심에 빛과 색이 있다.

●마음에 가라앉은 이미지를 기록

색연필 상자 앞에서 화자는 “그냥 빨강이라 부르고 말았을 색만 최소 여섯”이라 헤아리고, 배열을 바꿔가며 “도저히 안 어울릴 것 같은 어떤 한 쌍 사이의 상상 속 공간”에서 오래 그리던 색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58쪽) 친구 부부의 응접실에서 색유리를 통과한 오후 햇살을 마주한 날에는 “쭈글쭈글한 얼굴과 육신 말고도 각자를 정의해주는 어떤 정교한 무늬나 구조”를 보기도 한다.(75쪽)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사실과 허구가 맞닿은 ‘접경’에 놓인 노작가가 빛과 색으로 풀어낸 생애와 문학은 책을 덮은 뒤에도 빛깔의 여운을 남긴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10-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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