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씨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은 인공지능(AI)도 판독률이 50% 이하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국내 연구진이 사람의 망막을 흉내 낸 반도체 센서를 개발해 이 같은 잘못된 인식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망막처럼 빛의 세기에 따라 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를 키워 흐릿한 영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반도체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 제작 이미지
광주과학기술원(GIST) 반도체공학과,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전자공학부 공동연구팀이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세기에 따라 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를 키워 흐릿한 영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일반 카메라는 촬영 영상을 별도의 프로세서로 보내 대비를 높이거나 잡음(노이즈)을 제거한다. 반면 사람의 망막은 일부 시각 신호를 억제해 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들고 물체의 윤곽을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연구팀은 이런 인간 망막의 신호 억제 기능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일반 카메라에서 하는 영상 처리 작업의 일부를 센서에서 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센서가 빛을 감지하는 동시에 일부 영상 처리까지 수행하는 ‘인-센서 영상 처리’ 기술은 외부 프로세서로 보내야 할 데이터의 양을 줄여 전력 소모와 처리 지연을 줄일 수 있지만 기존 기술 가운데 일부는 빛의 세기에 따라 적절한 작동 조건을 별도로 선택해 소자를 제어해야 한다.
연구팀은 매우 얇은 반도체 물질 이셀레늄화텅스텐(WSe2)을 이용해 망막의 신호 억제 기능을 구현함으로써 작동 상태에 따라 신호를 줄이는 정도가 달라지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이 트랜지스터와 빛을 감지하는 광센서를 연결해 광센서가 빛을 받아 만든 전기 신호에 따라 트랜지스터의 작동 상태가 달라지도록 했다. 빛의 세기에 맞춰 신호를 줄이는 정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영상 처리 방식을 여러 개의 광센서에 적용해 밝고 어두운 부분이 섞인 영상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알파벳 ‘G’ 모양의 신호에 약한 노이즈를 섞어 입력한 결과 글자를 이루는 강한 신호는 비교적 유지된 반면 주변의 약한 노이즈는 줄어 ‘G’의 윤곽이 더 뚜렷해졌다.
연구진은 이런 영상 처리가 이미지를 학습하고 구별하는 인공 신경망의 문자 인식에도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나 안개 등으로 영상에 노이즈가 생기는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깨끗한 문자 이미지를 학습한 인공지능에 노이즈가 포함된 이미지를 그대로 입력했을 때 인식 정확도는 47.7%였지만 같은 이미지에 이번 영상 처리를 적용한 뒤 입력했을 때는 97.3%로 높아졌다.
강동호 G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들어오는 빛의 세기 자체를 이용해 별도의 조명 조건 판단 없이 픽셀 단위에서 영상 신호를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자율주행과 같이 실시간 영상 전처리 기능이 필요한 초저전력·고성능 AI 반도체 개발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