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이미 현실… 온실가스 감축, 성과로 이어져야” [이순녀의 이사람]

이순녀 기자
수정 2026-10-01 01:35
입력 2026-10-01 00:52
이창훈 기후위 공동위원장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추진2030년까지 1억 4900만t 더 줄여야
재생에너지 확대·전력망 투자 필요
신규 원전 건설은 사회적 합의 우선저탄소 전환 따른 산업계 지원
정부, 한국형 녹색대전환 전략 마련
790조 기후금융 등 재정·세제 혜택
탄소차액계약제로 기업 투자 유도기후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
함께 해법 찾는 기후시민회의 운영
기후과학위 내년 3월 새롭게 출범
인력·예산·전문성 부족은 보완돼야지난 8월 말 대홍수와 빙하 붕괴로 1400여명이 숨진 네팔에서 한 달여 만에 또 폭우와 산사태 등 기후 재난이 발생해 수십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가 최근 유엔총회 연설에서 “네팔만의 비극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경고”라고 지적했듯 이제 기후 위기로부터 안전한 나라는 없다. 우리도 올여름 경남 양산의 극한 폭염, 거제의 기록적 폭우 등 전례 없는 기상 이변을 경험했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탄소중립과 기후 재난의 피해를 줄이는 위기 대응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기후위)의 공동 수장인 이창훈(59) 민간위원장은 “지금까지의 기후정책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이 위원장을 만나 기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도준석 전문기자
-기후위는 기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에서 명칭이 변경된 기구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 기후 위기는 이미 현실로 닥쳤다. 탄녹위가 온실가스 감축과 녹색산업 육성에 중점을 뒀다면 기후위는 탄소중립 이행뿐 아니라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기후변화 예측과 기후 재난 대응까지 범위를 확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후위의 전신은 2009년 설립된 녹색성장위원회다. 2018년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설치됐는데 2021년 5월 두 기구를 통합해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출범했다. 그해 9월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탄녹위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올해 1월부터 기후위로 변경됐다.
-기후위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인가. 범국가적 기후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로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국가의 주요 기후정책이나 계획을 사전에 심의하고, 실제로 잘 이행되고 있는지 사후에 점검하는 민관 합동 심의 의결 기구다. 지난 4월 탄소중립법 개정을 통해 정책 조정 기능과 국가 기본계획 예산을 심의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다만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인력과 예산, 전문성이 보완돼야 한다. 위원장을 포함해 모든 민간위원들이 비상임이고 사무처에 자체 채용 직원보다 부처 파견 공무원들이 더 많은 점은 아쉽다.”
-지난 4월 임기 2년의 공동위원장에 취임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기후정책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다. 지금까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많은 힘을 쏟았다. 2025년까지의 실적을 놓고 보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이행 계획상 목표는 달성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뒤로 갈수록 감축률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대로는 2030년 목표 달성이 어렵다. 연도별 계획을 다시 설정해 목표 이행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발표한 2025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잠정 추계량에 따르면 지난해 총배출량은 6억 8571만t으로 전년보다 610만t 줄었다.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기로 한 ‘2030 NDC’를 달성하려면 1억 4900만t을 더 줄여야 한다. 2018~2025년 동안 줄인 배출량이 8400만t인데 앞으로 5년간 이보다 1.7배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는 지난 8월 26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통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2040년까지 69~80%, 2045년까지 84~90%를 줄이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했다.
-NDC 목표 달성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떤 해결 방안이 필요한가.
“재생에너지 설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력망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2030년까지 100GW, 2035년까지 발전 비중의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수립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태양광이나 풍력단지, 그리고 전력망 건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전력 다소비 기업들을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기후정책이 상충되지는 않나.
“기후부가 최근 제시한 전망치에 따르면 2040년 최대 전력 수요는 158.4~ 165.0GW다. 지난 4월 전망보다 27GW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24.3~24.6GW, AI 데이터센터에서 11.9GW의 추가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력 공급 확대가 2035 NDC의 차질 없는 이행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기후위가 사업 실현 가능성과 효율 개선 가능성 등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폭발적인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라는 기본 원칙에 비춰 보면 하루라도 빨리 쓸 수 있는 상용화된 기술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다. 원전도 이런 관점에서 따져 봐야 한다. 소형원자로를 짓더라도 10년 이상 걸린다.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100년 동안 대기권에 머물면서 온난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당장 탄소 감축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영농형 태양광은 즉시 건설이 가능하고 육상 풍력은 3년, 해상 풍력은 5년이 소요된다. 기후정책의 관점에선 무탄소 에너지원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주어진 시한 내에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최선의 선택지다. 그래도 충분하지 않다면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검토하는 방안은 고려할 만하다.”
-기후부가 최근 신규 원전 건설에 관한 공론화 추진 계획을 밝혔는데.
“다양한 사회계층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사회적 합의를 넓혀 가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맞춰 일정을 서둘지 말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여론을 취합했으면 한다.”
-저탄소 전환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로 탄소규제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규제가 무역·공급망과 긴밀히 연계되는 상황에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은 선택이 아닌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지키기 위한 필수 과제다. 정부도 저탄소 전환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기업 부담을 덜기 위한 지원책은.
“올해 들어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 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생산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 저탄소 전환을 위한 재정·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확대하고 있는데,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생산하는 저탄소 철강제품의 공공구매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내년부터 도입되는 탄소차액계약제도는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기술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고 수익성을 보장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지원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및 재난관리 체계는 어떤가.
“5년마다 국가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수립해 운영 중이고 지난 8월에는 기후적응법도 제정됐다. 법적·제도적 기반은 상당 부분 갖춰졌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빈발하는 복합기후재난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사전 예방 역량을 제고하고 기후위험 취약 계층에 대한 맞춤형 보호대책과 기관 간 협업 시스템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기후위 산하에 기후시민회의가 상설 법정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기후정책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보다는 시민의 이해와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감축 부담, 산업 경쟁력, 에너지 전환, 기후취약계층 보호 등 다양한 이해와 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기후정책일수록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사회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숙의 과정이 필수다.”
-기존의 시민 참여 기구와 차이점은.
“시민이 단순한 정책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기후정책의 의제 발굴부터 숙의·토론, 권고안 도출까지 참여하는 한국형 기후 공론장이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기후 위기의 경험과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 정책을 보다 현실적이고 생활밀착형으로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다. 기후시민회의를 통해 도출된 권고안은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정책 과정과 연계되도록 하고, 관계기관의 검토와 이행 상황도 꾸준히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일회용품 안 쓰기 등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시민과 기후친화적 정책을 요구하는 주권자로서의 기후시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기후과학위원회도 신설된다.
“기후위 산하에 전문가 자문기구인 기후과학위원회가 내년 3월 새롭게 출범한다. 기후과학, 경제학, 법학, 보건학 분야의 전문가 15명을 초빙해 위원회가 심의하는 내용의 전문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기후과학센터도 설립된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민간위원들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부의 기후정책에 독립적인 의견을 낼 것이다.”
-한국환경연구원장,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장 등을 지내며 오랜 기간 기후환경 의제를 이끌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은.
“늘 수요자 관점의 정책 수립과 집행을 강조해 왔다. 대상자 및 이해관계자와 지속해서 소통하고 맞춰 갈 때 정책 계획도 훨씬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다. 기후위도 다양한 직역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소통의 강점을 잘 활용해 기후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특히 새로 시작하는 두 조직인 기후시민회의와 기후과학위원회가 정부의 기후정책을 견인하고 조정하는 양대 축으로 잘 안착되도록 노력하겠다.”
■이창훈 공동위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회 위원,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한국환경연구원장, 국회 기후특위 공론화위원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2026-10-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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