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칼럼] “나라가 내 땅 뺏는다”는 공포, 그냥 둬도 되나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수정 2026-09-30 00:29
입력 2026-09-29 21:08

현실 안 맞는 경자유전 농지법
‘李 연임 개헌’ 음모론까지 등장
민심이 공포에 질려 있다면
따질 것 없이 손봐야 할 정책

속수무책 오르는 서울 집값만 문제가 아니다. 대책 없이 곤두박질치는 시골의 땅값도 문제가 심각하다. 개정 농지법의 후폭풍이다.

민심이 얼마나 흉흉한지는 추석 연휴에 시골을 다녀왔다면 알 만하다. “서울 집값은 끌어올리고, 지방 농지값은 끌어내리고. 초양극화 부동산 정책이냐.” 원색적인 성토가 끓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농지 전수조사는 꼭 필요하다”고 SNS에 쐐기를 박았다. 여론이 악화하자 당정이 투기 목적이 아닌 위반은 처분을 유예하는 보완책을 낸 이틀 뒤였다. 이 대통령은 “저항에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 경자유전 원칙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대통령에게 민생 현장을 직언하는 측근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민심은 지금 저항이 아니라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있다. 내 땅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반세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농경국가였다. 아직도 한 다리만 건너면 농촌에 연고 없는 국민이 없다. “어느 국민이 명령했느냐”는 반발이 거센 까닭이다.

이번 사태는 언론도 한참동안 관심 밖이었다. 농지 전수조사는 지난 2월 이 대통령이 “농지도 투기 대상”이라 지목하면서 시작됐다. 위성이 동원되고 드론이 뜨고 농촌 들녘은 시끌시끌했다. 그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지난 8월 말 개정 농지법이 시행되면서 논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개정법은 법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명령을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에서 ‘의무’로 바꿨다. 농사를 짓지 않거나, 농지를 불법으로 빌려준 땅 주인은 1년 안에 땅을 팔거나 자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강제처분 명령을 받는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 해마다 감정가와 공시지가 중 높은 쪽의 25%를 내야 한다. 4년이 지나면 사실상 ‘내 땅’이라고 할 수 없어지는 징벌적 조치다.



농지값은 ‘패닉 폭락’ 중이다. 농지를 샀다가 농사를 못 짓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할 판. 매물은 쏟아지는데, 매수할 강심장은 없다. 농막이라도 지을까 땅을 보러 오던 사람들조차 발길을 끊었다. 농지조사원들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빨리 팔라”고 한다.

농촌의 현실에 경자유전의 잣대는 어불성설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농지 임대차 비율은 47%. 계약서 없는 알음알음의 임대차가 대부분이다. 법대로라면 전부 불법 임대다. 고령의 농가는 논밭을 놀리느니 이웃에 맡겨 콩 한 됫박이라도 얻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관행도 이제는 일일이 ‘정당한 사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028년부터는 농사를 안 짓는 땅에 장기보유특별공제까지 폐지된다. 증여받은 농지에 양도소득세는 두 배. 선택지는 둘뿐이다. 자식들이 농사를 짓거나 강제로 땅을 팔거나.

이러니 시중에는 괴담이 난무한다. 국가가 농지 가격을 떨어뜨려 모조리 국유화한다는 설왕설래는 기본. 심지어 개헌 음모론이 돈다. 경자유전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헌법을 고치자고 개헌 물꼬를 터서 이 대통령 연임을 끼워 넣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기획하는 거대한 약탈경제”라는 음모론까지 들린다.

경미한 농지법 위반은 처분 명령을 유예하겠다는 것이 당정의 보완책이다. 이 역시 “병 주고 약 주냐”는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 투기와 실경작을 가르는 구체적 기준이 없다. ‘취득 당시 영농 의사’를 종합 판단한다는 방침에 “관심법이냐”는 냉소가 이어진다.

경미한 위반 사유는 봐주겠다는 발상도 초법적이다. 법대로 밀고 나가든지 아니면 과감히 법을 고치든지. 불법을 봐주는 특별법을 따로 만드는 것은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모순이다.

투기를 잡겠다는 의지 자체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문제는 대소동의 근원적 취지를 국민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투기로 방치된 땅을 정리한다 하자. 그래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하다 못해 귀농 청년을 위한 국가적 정비 사업이라는 청사진 한 장이라도 제시됐어야 한다.

“나라가 내 땅을 뺏는다.”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민심이 겁을 먹고 있다. 이쯤되면 묻고 따질 것 없이 방법론이 틀린 정책이다. “소수의 저항”이라고 말할 일이 결코 아니다.

황수정 논설실장

황수정 논설실장
2026-09-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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