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일하고 이삿짐 날랐다…“노출병 있냐” 악플에도 버틴 진심 “비치발리볼은 운명이니까요”

류재민 기자
수정 2026-09-29 09:55
입력 2026-09-29 07:30
신지은·김정아 아시안게임 16강 탈락
아르바이트 병행하며 어렵게 선수 생활
“실업팀 생겨 운동 전념했으면 좋겠다”
20대 또래 친구들 향해 “힘내자” 격려
운동을 하기 위해 생계에 뛰어들었다. 쿠팡 물류창고에서도 일하고 이삿짐도 날랐다. 틈틈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면 운동에 썼는데 그걸로는 부족해서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힘겹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귀중한 1승을 거뒀고 아쉽지만 16강에서 여정을 마치게 됐다.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신지은(25)과 김정아(24)가 28일 일본 아이치현 헤키난 료쿠치 비치 코트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비치발리볼 여자부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샤신이-옌쉬 조(중국)에 0-2(6-21 12-21)로 패하며 탈락했다.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극적으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조 2위로 16강에 올랐지만 최강팀인 중국의 벽이 높았다.
이날 선수들은 경기를 하면서 안 풀린다는 듯이 여러 차례 아쉬워하는 소리를 냈다. 경기 후 만난 신지은은 “자존심 상하는 게 공이 손에 닿으니까 기쁘더라. 1세트부터 그냥 편하게 할 걸 그랬다”며 허탈해했다.
결과만 보면 16강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이지만 이들이 1승을 거두기까지 거쳐온 과정은 1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 실업팀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운동이 하고 싶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목 특성상 노출이 많은 옷을 입는 것과 관련해 무수히 쏟아진 비난과 악플까지 견뎌내며 비치발리볼에 매진해 얻어낸 값진 결과다.
김정아는 “주말에도 계속 일을 한다. 유소년 지도도 하고 쿠팡에서 물류 작업도 한다”면서 “비치발리볼 수당으로만 먹고살기에는 아예 생활이 안 돼서 아등바등한다”고 말했다. 신지은 역시 “쿠팡, 마켓컬리는 당연히 해봤고 서빙 아르바이트도 하고 힘이 세니까 이삿짐 옮겨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신지은은 고교 시절까지 엘리트 배구 선수로 활동하다 고3 때 비치발리볼로 전향한 뒤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고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월 100만원 정도의 국가대표 수당만으로는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어 생업과 병행해야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버티는 이유는 운동이 정말 좋아서다. 신지은은 “남들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소셜미디어(SNS)와 방송을 통해 점점 유명해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운동에 조금 더 전념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신지은은 최근 한 방송에 나와 경기복인 비키니 의상과 관련해 “몇몇 사람들이 ‘노출병 걸렸냐?’, ‘술집 여자 같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신지은은 이런 관심에 대해 “어찌 됐든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계되고 알려지게 된 것에 기쁘고 감사하다”면서 취재진에게도 “우리를 찾아주신 것조차 감사하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한 선수들도 어쨌든 해내고 있지 않나. 갑자기 다리 하나가 안 좋아지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한은 최대한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도로공사, IBK기업은 등에서 프로 생활을 했던 김정아는 “프로가 대중한테도 더 인기가 있고 더 명예로운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치발리볼이 더 재밌다”면서 “사람들이 비치발리볼에 대한 매력을 좀 더 알고 관심을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원래 피부색보다 유독 까만 팔은 그가 비치발리볼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증표다. 사람들이 비치발리볼을 하는데도 하얗다고 얘기하는 게 싫어 김정아는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면서 까무잡잡해졌다.
두 선수의 소원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신지은은 “실업팀 하나 만들어지는 게 바람”이라며 “저희도 부족한 거 알고 성적이 중요한 것도 알지만 아등바등하니까 누군가는 알아주기 시작한다. 미비하겠지만 제대로 가고 있으면 뭔가 도움이 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당장 개선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신지은은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도움을 받게 되고 그만두려 해도 못 그만두게 한다”면서 “비치발리볼은 내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민이 큰 20대 또래들을 향해 “다 같이 힘드니까 다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헤키난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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