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창] 현장의 변화를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수정 2026-09-29 00:59
입력 2026-09-29 00:15
산업재해 예방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사고가 난 뒤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미리 찾아 제거하는 것이다. 알고 있는 위험이 현장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기본이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산업안전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프로야구 경기마저 중단될 만큼 이례적인 폭염이었지만 산업현장에는 그 속에서도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기후변화와 신기술 도입으로 현장의 위험 양상이 달라지는 만큼 새로운 위험에 선제 대응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정부가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은 제도와 현장을 함께 바꾸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고리를 끊고 사망사고를 예방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방점을 두고 영세사업장과 취약노동자 지원을 강화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노사가 안전 주체가 되고 산업안전 투자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사고 사망자 수는 여러 예방 정책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후행지표여서 단기간 숫자만으로 성과를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변화의 흐름은 분명하다. 올해 상반기 사고 사망자는 25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1.8% 감소하며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22년 이후 가장 적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17.0%, 5인 미만 사업장은 23.9% 감소했다. 정책의 변화가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긍정적 신호다.

현장의 구체적인 위험에도 선제 대응했다. 폭염에는 노동자 건강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특별대책반을 가동했다. 작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일터지킴이를 활용해 상시 점검을 하고 이동식 에어컨 등 예방 장비 지원을 강화했다. 지붕·태양광 공사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지붕 전담 지킴이 200명이 현장 곳곳을 촘촘히 순찰하도록 했다. 맨홀 등 밀폐공간 작업은 유해가스 측정과 환기 여부를 작업 전에 확인하도록 했다. 그 결과 올해 온열질환 사망은 전년 6명에서 3명으로, 지붕 추락 사망은 상반기 기준 24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법과 제도의 변화도 함께 추진했다.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위험성 평가 실효성 강화 등 주요 과제가 입법으로 이어졌다. 산업안전이 기업 경영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노사의 안전의식과 책임감을 높여 현장에서 스스로 사고를 예방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앞으로는 위험이 어디에 집중되는지를 더 정교하게 살펴 정책의 길목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기후변화와 기술혁신, 노동시장 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위험에도 한발 앞서 대비해야 한다. 지금의 사고 사망 감소 흐름을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위험은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이 분포하지 않는다. 사업장의 규모·업종과 성별·연령·고용 관계, 국적과 언어·문화에 따라 ‘격차’가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일하는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데도 안전과 건강상 권리와 의무에 차등이 생기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안전보건에서 위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또 하나의 지상과제다.

안전과 보건은 따로 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 사고를 막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일까지 함께 자리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는 대화의 장이 중요하다. 앞으로 발족할 ‘안전한 일터 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중장기 방향을 논의하고 현장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K안전보건’ 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2026-09-2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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