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세계,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96세 사상가의 일침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9-29 00:25
입력 2026-09-29 00:09

셀마 제임스 ‘성, 인종…’ 번역 출간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 주장하며
평생 보이지 않던 이들의 투쟁 지지
“자유 쟁취한 한국인, 경험 공유를”

셀마 제임스.
갈무리 제공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모두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매우 분열돼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여성 인권 및 반인종주의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셀마 제임스(96)가 지난 27일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한국 독자 70여명과 만났다. 이번 행사는 출판사 갈무리가 그의 저서 ‘성, 인종, 그리고 계급’ 번역 출간을 기념해 마련했다.


제임스는 1970년대 ‘가사 노동 임금 운동’을 이끌며 가정 내 무임금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이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는 핵심 토대임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주부, 어머니, 이주민, 성노동자, 장애 여성, 수감자 등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투쟁을 노동 계급 운동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현재까지도 ‘살상이 아닌 돌봄에 투자하라’라는 구호 아래 돌봄,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 복지, 생명, 민주주의를 잇는 국제적 풀뿌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과거에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주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양측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주류 페미니즘은 ‘가사 노동에 임금을 부여하면 여성을 가정에 영원히 얽매이게 할 것’이라 비판했고, 마르크스주의 측은 ‘노동자의 의식화를 방해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시각은 확고했다. 그는 “정작 어머니를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어머니들이) 우리 자신과 서로를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강조했다. 시장에서 노동을 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돌봄 그 자체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또 대상을 여성으로만 한정 짓지 않았다. 책의 제목 ‘성, 인종, 그리고 계급’에는 교차성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세상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얽혀 존재하죠. 어떤 영역에서는 권력을 가지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취약해지기도 합니다. 아주 적은 것을 가진 사람 혹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 모두가 더 많은 것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강연 말미 제임스는 한국 독자들을 향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얻어낸 굉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자유를 쟁취해 낸 그 훌륭한 과정을 우리 모두에게 공유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수경 기자
2026-09-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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