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부부는 법정에서도 서로의 동료인가

이민영 기자
이민영 기자
수정 2026-09-28 01:49
입력 2026-09-28 00:24

법조인 부부 흔해진 시대
배우자 사건이 올라와도
공정성 의심받지 않아야

‘노토리어스 RGB’로 알려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남편 마틴 긴즈버그는 유명한 세법 전문 변호사였다. 그는 부인의 커리어를 적극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로펌 ‘웨일 고샬 앤드 맹거스’에서 변호사이자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로 일했다. 부인이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자 뉴욕 로펌에서 실무를 그만두고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로 부임했다. 이를 두고 긴즈버그와 오랫동안 협력한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로펌이 보유한 수많은 고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회고했다.

긴즈버그 부부 사례는 단순히 ‘부인의 성공을 위해 남편이 희생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배우자의 법조 직역이 상대방의 업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클 때, 부부가 각자 커리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한국도 법조인 부부가 흔해지면서 비슷한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법조인 부부가 지금처럼 흔치 않던 시절, 한 부장판사는 기자에게 “10년쯤 뒤면 법조인 부부가 늘어나 이해충돌이 법조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베갯머리 송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사의 배우자가 해당 사건의 변호사라면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신숙희 대법관의 남편은 백강진 판사다. 둘은 동갑내기이자 서울대 법대 88학번 동기로 알려졌다. 백 판사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국제재판관을 지낸 국제 형사법 전문가다. 백 판사는 현재 서울고법에 재직 중인데, 해당 재판부 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될 경우 신 대법관이 해당 재판에서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장판사는 “백 판사도 대법관이 될 정도로 훌륭한 분인데, 대법관 검증을 사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형 전 대법관의 부인은 전현정 변호사다. 김 전 대법관은 판사를 하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민사법을 가르쳤다. 대법관을 마치고는 서울대 로스쿨로 돌아갔다. 전 변호사도 23년간 판사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대법관 되기 7개월 전에 그만뒀다. 전 변호사는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됐지만 임명되지는 않았다. 김 전 대법관이 교수 시절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인가’라는 제자 질문에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전 변호사)과 법률 토론을 할 때”라고 답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한 사례는 부부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상훈 전 대법관의 동생인 이광범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인사실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사법정책실장 등 요직을 거치며 ‘대법관감’으로 꼽혔다. 하지만 형이 대법관에 취임하기 직전 법원을 떠났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충돌 국면에서도 법조인 부부 이슈가 거론된다. 대법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의 남편은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다. ‘대법관·헌법재판관 부부’ 탄생을 두고 각자 의견은 다르겠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서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을 ‘재판소원 1호’로 선택한 상황이다. 사법부 최고 기관의 견제와 균형이 부부 관계라는 사적 영역과 얽힐 때 재판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다.

마틴은 1993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부인을 지지해 왔고, 부인도 저를 지지해 왔다.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가족이다”라고 말했다. 긴즈버그 부부에게 서로의 커리어를 존중하는 일은 누군가의 꿈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희생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공정·정의·신뢰가 필수인 법조인, 그중에서도 법조인 부부에게는 고도의 조건이 붙는다. 서로의 일을 존중하되,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민영 사회1부 차장

이민영 사회1부 차장
2026-09-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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