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수염 훔쳐 온 드론, 칠흑 같은 어둠에서도 출구 찾았다 [사이언스 브런치]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9-20 17:30
입력 2026-09-20 17:30
생쥐는 동굴, 땅속, 건물 내부, 하수도처럼 어둡고 비좁은 공간을 거침없이 헤집고 다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초능력’의 비결은 바로 수염이다. 과학자들이 생쥐의 수염에서 영감을 받아 초소형 자율 드론에 인공 수염을 장착해 어둠, 먼지, 연기를 뚫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TUD) 항공우주공학부 연구팀은 생쥐 수염을 모사해 주변 물체를 부드럽게 더듬어 가며 길을 찾고 공간을 탐색할 수 있는 가벼운 수염형 촉각 센서를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9월 18일 자에 실렸다.
언스플래쉬 제공
복잡한 환경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능력은 자율 로봇의 기본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무게가 100g도 되지 않는 초소형 드론은 감지 능력, 연산 능력, 에너지 모든 면에서 제약을 받는다. 카메라, 라이다, 거리측정 센서 같은 기존의 크고 무거운 항법 센서는 너무 무거워 장착하기 어렵고 연기가 가득 찬 건물이나 동굴처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기존 접촉 기반 시스템은 로봇 팔이나 기계식 범퍼를 갖춰 드론의 크기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설치류의 진동모를 본떠 가볍고 반응 지연이 짧은 촉각 인지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인공 수염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물체에 닿아 있는 동안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계속 제공해 항법이 가능하게 도와준다.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 수염에는 뿌리 부분에 초소형 압력 센서 3개가 달려 있어 드론이 접촉 상황을 3차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수염이 물체 표면에 닿아 휘어지면 압력 변화를 통해 접촉 지점이 공간상 어디인지, 얼마나 깊이 닿아 있는지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드론은 가까이 있는 표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고 장애물 회피, 표면 따라가기, 촉각 지도 작성 같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연구팀은 잡음, 신호 표류, 각종 왜곡을 만드는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기류와 진짜 접촉 신호를 구분할 수 있게 잡음을 보정하고 수염 신호를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한 추정값으로 바꿔주는 가벼운 실시간 처리 파이프라인도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잡음 처리 시스템은 드론의 프로펠러가 만드는 난류에서 의미 있는 촉각 정보만 분리할 수 있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메모리는 37킬로바이트(KB)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 제공
연구팀은 인공 수염을 장착한 초소형 드론이 완전한 암흑 속에서 단단한 표면과 무른 표면의 윤곽을 모두 구분하고 벽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밀폐된 공간을 탐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살루아 하마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촉각을 이용해 미지의 공간을 탐색하고 날아가는 촉각 항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가벼운 하드웨어와 정교한 온보드 처리 기술을 결합해 가장 작은 자율 비행 로봇에서도 촉각이 견고한 감지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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