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어도 감정은 전달되는 ‘묘생묘세’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9-17 20:41
입력 2026-09-17 20:41

묘생묘세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돌베개/ 196쪽/ 1만 7000원

우연히 찾아온 고양이와의 만남
서로 돌보며 살아갈 힘 얻는 그들
작가 천쉐


대만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천쉐는 신작 ‘묘생묘세’ 한국어판을 내며 한국과의 인연을 풀었다. 1995년 ‘악녀서’로 대만 사회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천쉐는 지난해 여름 처음 한국을 찾았을 당시, 완성해둔 장편 두 편을 마음에 들지 않아 출간하지 못한 채 “작가로서 슬럼프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응원하는 한국 독자들과 진지한 질문을 건넨 기자들을 만나며 “작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대만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한 그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책을 쓰고 싶다”(15쪽)는 바람으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묘생묘세’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삶의 의미를 잃은 샤톈이, 여름비 내리던 날 우연히 찾아온 하얀 고양이를 거두며 시작된다. 그는 고양이에게 ‘레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서로를 돌보는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마지막 순간 온 힘을 다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안기는 레인의 모습까지, 소설은 장을 번갈아 두 존재의 시선을 보여주며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는 과정을 천천히, 덤덤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희미하게 비쳐 든 가로등 불빛에 한참을 울던 샤텐은 “레인이 바닥에 늘어뜨린 내 손등 위에 앞발을 얹고”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을 본다.(65쪽) 레인은 “끝내 새어 나오는 듯”한 샤텐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나도 버림받은 적이 있다고, 그 고통이 어떤 감정인지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69쪽) 그래서 그저 샤텐의 손등에 앞발을 포갰다.



존재가 서로에게 보내는 감정은 말이라는 수단이 없어도 전달된다. 레즈비언 부부로 살아오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옮겨온 작가의 시선은 비인간 존재에게까지 넓혀 공명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를 이해하는 건 아님을. 때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을 다해 소통한다는 것을.”(95쪽)

천쉐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며 “글 쓰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쓰기뿐”이라고 썼다. 소설은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나누는 사랑, 관계의 본질을 보여주며 작가 자신을 구원했고 독자들에게는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09-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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